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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속에서 여호와를 힘입다
[오늘의 말씀] 사무엘상 30:3-6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은 사울의 추격을 피해 블레셋의 시글락에 망명 중이었습니다. 그는 살기 위해 적국의 왕 아기스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했고, 동족 이스라엘과 싸워야 하는 비참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그 전쟁에서 제외되어 시글락으로 돌아왔으나, 그를 기다린 것은 아말렉의 습격..
내면의 폭풍을 잠재우는 거룩한 통치
[오늘의 말씀] 골로새서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로새 교회는 당시 헬라 철학과 영지주의적 이단 사상, 그리고 율법주의의 위협 속에서 영적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이 편지를 쓴 바울은 불안과 분열의 위기에 처한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우주적 통치권을 강조합니다. 본문에서 '주장하게 하라'로 번역된 헬라어 '브라뷰에토'는 고대 올림픽 경기에서 심판이 규칙을 적용하고 판정을 내리는 역할을 의미합니다. 즉, 바울은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이나 갈등, 이단의 거짓 가르침이 폭풍처럼 몰아칠 때, 오직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강이 최종적인 심판관이 되어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판결하..
성경 봉독, 한 본문인가 세 본문인가? 초대 교회의 예배 전통을 조명하다
[OCJ 뉴스] 현대 교회의 주일예배에서는 설교자가 선택한 단 하나의 성경 본문만을 짧게 읽는 것이 보편적인 풍경이 되었다. 하지만 2000년 기독교 예배사를 되짚어보면, 한 주일에 성경 한 본문만 읽고 마치는 형태는 매우 후대에 나타난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1. 세 본문 읽기의 역사적 기원과 신학적 의미초대 교회부터 종교개혁 시기까지 주일예배에서는 구약, 사도 서신, 복음서 등 세 가지 본문이 함께 낭독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2세기 중반 유스티누스는 그의 저서에서 주일예배 시 '사도들의 회상록(복음서)'과 '예언자들의 글(구약)'을 시간이 허락하는 한 길게 낭독했다고 기록했다. 이후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구약, 서신서, 복음서를 차례로 읽고 하나의 설교로 엮어내는 전통을 확립..
두려움 속에서 피어난 거룩한 용기
[오늘의 말씀] 느헤미야 2:1-5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니산월에 왕 앞에 포도주가 있기로 내가 그 포도주를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 앞에서 수심이 없었더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하더라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하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
예수는 누구를 가족이라 불렀는가: 혈연을 넘어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공동체
기독교 역사 속에서 '가족'이라는 단어는 늘 따뜻함과 영적 보호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깊이 들여다보면, 예수께서 선포하신 가족의 정의는 당시 사회의 통념을 뒤흔드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 육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와 만나기를 청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며 내 동생들이냐"라고 반문하시며, 제자들을 가리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혈연 중심의 고대 가부장제 사회에서 매우 충격적인 선언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영적 가족 공동체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최근 한국 교계에서는 이러한 성경적 질문을 현대적인 시각에서 다시 던지는..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오늘의 말씀] 요한계시록 15:3-4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15장은 마지막 일곱 재앙을 품은 일곱 천사가 나타나기 직전,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곳 곁에 선 성도들의 찬양을 묘사합니다. 이들은 짐승과 그의 우상을 이기고 벗어난 승리자들입니다.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모세의 노래'이자 '어린 양의 노래'입니다. 과거 출애굽 때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구원과 거룩하심을 ..
광야로 향하는 발걸음, 한 영혼을 위한 순종
[오늘의 말씀] 사도행전 8장 26절 - 30절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일어나 가서 보니 에티오피아 사람 곧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초대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난 후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복음을 전해 큰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기적을 보고 복음을 받아들이며 성 안에 큰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성공적인 사역의 한복판에서 ..
상처의 자리에서 기다리는 약속
[오늘의 말씀] 누가복음 24장 49절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에서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명령하십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그 기다림의 장소가 다름 아닌 예루살렘 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은 제자들이 십자가의 두려움 앞에서 스승을 버리고 도망친 실패의 자리였고 처참한 기억이 남아있는 트라우마의 장소였습니다. 갈릴리라는 익숙하고 편안한 고향이 아니라 자신들의 연약함이 철저히 폭로된 예루살렘에서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의 실패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주어지지 않고 오히려 그 상처의 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