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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의 기쁨을 회복하시다: 일상의 기적을 그리는 빛의 화가
눈을 감으면 캔버스 위로 번져가는 따뜻한 황금빛과 심장을 두드리는 강렬한 붉은색이 망막에 맴도는 듯합니다. 프랑스의 현대 종교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아르카바스(Arcabas, 본명 장 마리 피로)의 명화, ‘가나의 혼인 잔치(Les Noces de Cana)’ 앞에 서면 우리는 어느새 2천 년 전 갈릴리의 작은 마을, 잔치가 벌어지는 소박한 집 마당에 초대받은 손님이 됩니다. 아르카바스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붓을 든 종’이라 부르며 평생을 캔버스 앞의 수도자처럼 살았던 독실한 가톨릭 화가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휩쓸고 간 참혹한 폐허 속에서, 그는 상실과 고통에 짓눌린 세상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잿빛으로 변해버린 세상에 복음이 가진 본연의 기쁨과 영적인 위로를 색채로 전..
갓을 쓴 예수, 우리의 질고를 지시다
서구의 르네상스 명화 속에서나 뵈었던 예수님이 낯설고도 친숙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계십니다. 금발 머리에 로마 시대의 겉옷을 두른 분이 아닙니다. 가시 면류관 대신 헝클어진 상투를 틀고, 갓을 벗은 채 무거운 십자가에 짓눌려 비틀거리는 조선의 청년. 그를 위협하는 이들은 창과 방패를 든 로마 병정이 아니라 포졸의 복장을 한 조선의 관원들입니다. 그 뒤를 따르며 애통해하는 여인들은 흰 한복 치마폭을 부여잡고 차마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운보 김기창 화백의 명화, 입니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화폭 너머로 화가 자신의 침묵과 시대의 비명이 동시에 들려오는 듯합니다. 어린 시절 청각을 잃고 영원한 고요 속에 살아야 했던 운보 김기창 화백은, 1950년 한국..
민중의 식탁에서 웃고 계신 예수
[영혼의 미술관] 그림 앞에 서면, 어디선가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낡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필리핀의 어느 후미진 뒷골목, 하루의 고단한 노동을 마친 사람들이 허름한 식탁에 둘러앉아 시원한 맥주잔을 부딪치고 있습니다. 흙빛과 따뜻한 오렌지색이 주조를 이루는 화폭은 열대의 뜨거운 공기와 서민들의 사람 냄새를 훅 끼치게 합니다. 그런데 이 소박하고 왁자지껄한 술자리의 한가운데, 파안대소하며 우리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한 '동네 아저씨'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필리핀을 대표하는 현대 기독교 미술가 에마누엘 가리바이(Emmanuel Garibay)의 작품 는 우리가 익히 아는 성화의 공식을 유쾌하게 깨뜨립니다. 가리바이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빛이 쏟아..
일상의 밥상에 찾아온 낯설고도 친밀한 신비
[영혼의 미술관] 작품 앞에 서면, 가장 먼저 흙의 온기와도 같은 소박한 질감이 우리의 시선을 포근하게 감싸 안습니다. 거친 닥종이 위로 콩즙과 천연 안료가 스며들어 만들어낸 깊고 그윽한 색채는 화려한 서양식 캔버스와는 다른, 어머니의 품 같은 다정함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림 속 풍경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이내 유쾌하고도 경이로운 낯설음을 마주하게 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 속에서 보아왔던 웅장한 식탁, 서양의 빵과 포도주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정갈한 초밥과 생선, 그리고 사케가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식탁을 둘러싼 예수와 제자들 역시 유대의 전통 복장이 아닌, 우리에게 익숙한 동양의 전통 기모노를 입고 정겹게 둘러앉아 있습니다. 이 경이로운 작품은 17세에 기독교로 개종한 후, 평생..
붉은 대지 위에 피어난 평화의 인사
[영혼의 미술관] 작품 앞에 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캔버스를 가득 채운 강렬한 붉은색과 찬란한 황금빛의 향연입니다. 마치 서양 대성당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는 듯하지만, 그 형태를 조형하고 있는 굵고 검은 선들은 다분히 동양화의 힘 있는 붓 터치를 닮아 있습니다. 눈이 부시도록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이 색채들 속에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토록 환희에 찬 그림을 그린 화가 허치(He Qi)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우리는 깊은 먹먹함과 동시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중국 출신의 현대 기독교 화가인 그는 안타깝게도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폭력과 억압의 시대를 관통해야 했습니다. 칠흑 같은 강제 노동 수용소의 억압 속에서, 그는 몰래 성모 마리..
룻과 보아스, 일상의 들녘에 깃든 하나님의 섭리
[영혼의 미술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프랑스의 어느 늦여름 들녘, 이마에 맺힌 굵은 땀방울을 닦아내며 잠시 그늘에 모여 앉은 농부들의 숨소리가 캔버스 너머로 들려오는 듯합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의 1853년 작, 앞에 서면 우리는 흙내음 물씬 풍기는 어느 평범한 하루의 한가운데로 초대받게 됩니다. 평생토록 흙을 만지며 살아가는 농부들의 곁을 지켰던 밀레는, 그들의 고단하고 거친 일상 속에 깃든 숭고함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 화가였습니다.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그에게 노동은 결코 가난한 자들의 피할 수 없는 육체적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명을 이어가는 거룩한 행위이자, 땀방울로 올려드리는 '신성한 기도'였습니다. 밀레는 구약성경 룻기..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는 야곱: 교차된 두 손에 담긴 섭리
[영혼의 미술관] 1656년 암스테르담의 어느 어두운 방, 파산 선고를 받고 빚더미에 앉은 늙은 화가 렘브란트가 붓을 쥐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차례로 가슴에 묻고, 평생을 바쳐 이룬 세간살이마저 경매로 넘겨야 했던 참담한 시기.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캔버스 위에는 세상 그 어떤 풍경보다 따뜻하고 성스러운 황금빛이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년에 완성한 걸작 에는 숨을 거두기 직전,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노인 야곱이 침상에 기대어 앉아 있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시력을 잃어 초점이 흐릿해진 눈과 깊게 파인 주름진 얼굴에는 육신의 쇠락을 가볍게 뛰어넘는 깊은 영적 통찰이 형형하게 빛납니다. 야곱은 장자 므낫세가 아닌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오른손을 얹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시..
절망의 무덤을 비추는 부활의 빛: 고흐가 만난 '나사로'
[영혼의 미술관] 1890년 5월, 프랑스 남부 생레미의 정신병원. 창살 너머로 스며드는 한 줄기 빛에 의지한 채, 한 화가가 붓을 쥐고 캔버스 앞에 앉아 있습니다. 극심한 환각과 걷잡을 수 없는 우울증이 번갈아 찾아오며 그의 영혼을 무참히 흔들던 시기였습니다. 육체와 정신이 모두 무너져 내린 생의 가장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빈센트 반 고흐는 사랑하는 동생 테오가 보내준 렘브란트의 판화 '나사로의 부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본래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난 고흐는 청년 시절, 벨기에의 척박한 탄광촌 보리나주에서 빈민들을 돌보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던 헌신적인 평신도 사역자였습니다. 누구보다 뜨거운 기독교 신앙을 품고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했지만, 경직되고 차가운 제도권 교회의 외면과 거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