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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속에 숨겨진 침묵의 구원: 갈보리 언덕으로의 행렬
피터 브뢰헬의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광활한 대지 위로 수많은 인간의 군상이 개미 떼처럼 흩어져 있습니다. 하늘은 맑고 공기는 평온해 보이지만 그 평범한 일상의 표면 아래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비극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거대한 화폭을 마주하며 구원자를 찾으려 애쓰지만 정작 그분은 화면 한가운데에서 먼지처럼 작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화가의 숨결 피터 브뢰헬은 16세기 네덜란드의 차가운 바람과 종교적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화가이자 관찰자로 살았습니다. 그가 살던 시대는 스페인의 잔혹한 통치 아래 있었으며 광장에는 늘 처형의 공포와 민중의 탄식이 가득했습니다. 브뢰헬은 성경 속의 갈보리를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 발을 딛고 서 있는 비극적인 현실의 투영으로 보았습니다..
정죄의 돌을 내려놓고 은혜의 시선으로
눈부시게 쏟아지는 중동의 따사로운 햇살이 넓은 성전 뜰의 계단과 바닥 위로 찬란하게 부서집니다. 그러나 화면을 가득 채운 이토록 평화로운 빛의 묘사와는 다르게, 그림 속 인물들이 빚어내는 분위기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극적인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분노와 혐오에 찬 얼굴로 손에 묵직한 돌을 쥔 군중들, 그리고 그들 앞에 내동댕이쳐진 채 공포에 질려 바닥에 엎드린 한 여인. 생사가 오가는 그 지독한 소란의 한가운데, 놀랍게도 깊은 고요를 간직한 채 평온하게 앉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러시아의 사실주의 화가 바실리 폴레노프(Vasily Polenov)의 걸작, 앞에 서면 우리는 마치 2천 년 전 예루살렘 성전의 그 숨 막히는 현장으로 걸어 들어간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폴레노프는 성서의 장면을 ..
톱밥 흩날리는 목공소에 드리운 십자가의 그림자
눈을 감고 19세기의 어느 목공소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고 상상해 봅니다. 코끝을 찌르는 짙은 나무 냄새, 바닥에 수북이 쌓인 거친 톱밥, 그리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합니다. 19세기 영국 라파엘전파의 핵심 멤버였던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의 작품, 는 바로 이 흙먼지 날리는 삶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당시 관습적이고 이상화된 미술을 거부했던 밀레이는 '자연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담고자 했습니다. 그는 이 작품을 위해 실제 런던의 허름한 목공소를 찾아가 오랜 시간 머물렀습니다. 톱밥이 흩날리는 형태를 관찰하고, 평생 나무를 깎아온 진짜 목수의 굵은 핏줄과 근육을 철저히 연구하여 화폭에 옮겼습니다. 그러나 1850년, 이 그림이 세상에..
일상의 호수에 울려 퍼지는 거룩한 기도
[영혼의 미술관] 하루의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잔잔한 호수 위로 조그만 나룻배 한 척이 미끄러지듯 나아갑니다. 배 안에는 곁을 지키는 순한 양 떼와 함께 하루의 고단한 노동을 마친 한 가족이 타고 있습니다. 등 뒤로 지는 석양의 황금빛이 수면 위로 눈부시게 부서지며, 찰랑이는 물결을 따라 따스한 온기를 전해옵니다. 이탈리아의 상징주의 화가 조반니 세간티니(Giovanni Segantini)의 명작, 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평화롭고도 경이로운 저녁 풍경입니다. 세간티니는 불우하고 몹시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의 차가움에 갇히지 않고, 알프스의 척박한 대자연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농부들의 삶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에게 거친 자연과 정직하게 땀 흘리는 노동은 곧 신성함 그 자체..
진리의 기둥 위에 선 네 명의 증인
알브레히트 뒤러의 : 신학적 성찰 깊어가는 가을의 적막 속에서 화가는 거대한 두 개의 목판 앞에 섰습니다.그의 손에는 수십 년간 다듬어온 정교한 기술이, 그의 가슴에는 시대를 뒤흔드는 거룩한 열망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알브레히트 뒤러, 그는 이제 화려한 궁정의 부름이 아닌 자신의 영혼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마지막 붓질을 시작합니다. 화가의 숨결 뒤러는 르네상스의 빛이 유럽을 비추던 시기, 인간의 이성과 신의 섭리 사이에서 길을 찾던 예술가였습니다.그는 마르틴 루터의 글을 읽으며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복음의 자유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세상은 종교적 갈등과 분파주의로 인해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뒤러는 예술가로서 이 혼돈을 바로잡을 힘이 자신에게 없음을 탄식하며 기도했습니다.결국 그..
모든 것이 끊어진 순간에 울리는 단 하나의 선율
[영혼의 미술관] 짙은 안개가 깔린 푸른빛과 회색조의 몽환적인 화폭 안으로 가만히 걸음을 옮겨 봅니다. 그곳에는 두 눈을 수건으로 단단히 가린 한 여인이 거대한 지구 위에 위태롭게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여인의 품에 안긴 것은 낡은 나무 수금(Lyre)입니다. 가슴 아프게도 수금을 이루던 탄탄한 줄들은 모두 툭툭 끊어져 버렸고, 이제 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단 하나의 줄뿐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절망하여 악기를 내던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지막 남은 그 한 줄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튕기며, 거기서 흘러나오는 아주 미세한 선율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수금에 바짝 귀를 갖다 대고 있습니다. 깊은 슬픔이 배어 있는 듯한 푸른빛의 공간은 역설적이게도 여인의 웅크린 모습과..
평범한 일상 속으로 스며든 고요한 은혜
[영혼의 미술관] 미술관의 한구석,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그림 한 점이 있습니다. 화려한 금빛 후광도, 천사들의 비상(飛上)도 없는 이 그림 앞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미국 출신의 화가 가리 멜처스(Gari Melchers)가 그린 입니다. 자신이 속해 있던 당대 예술계의 화려한 문법과 번잡한 도시를 뒤로한 채, 멜처스는 네덜란드의 작은 어촌 마을로 스며들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거대하고 장엄한 성당이 아닌, 가장 낮은 자들이 모인 단출한 시골 예배당의 뒷자리에 조용히 앉았습니다. 그림 속 풍경은 그가 바라본 따뜻한 시선 그 자체입니다. 꾸밈없는 나무 의자에 앉은 사람들의 투박한 옷차림 위로, 창문을 통해 들어온 은은한 자연광이 조용히 내려앉습니다. 화면 중앙에는 맑은 푸른색 옷을 ..
가장 남루한 식탁에 찾아온 빛, 엠마오의 그리스도
[영혼의 미술관] 어느 낡고 허름한 19세기 프랑스 농가의 부엌,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공간에 따스한 빛이 은은하게 스며듭니다.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하루의 고단한 노동을 마친 두 농부가 투박한 나무 식탁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흙먼지가 잔뜩 묻은 낡은 작업복, 밭을 일구느라 마디가 굵어지고 거칠어진 손. 그들은 성경 속 거룩한 사도들이라기보다는, 당장이라도 우리 곁에서 마주칠 법한 지친 이웃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남루한 식탁의 한가운데, 눈부신 금빛 후광 대신 지극히 소박하고 평온한 얼굴을 한 분이 빵을 떼어 나누고 계십니다. 이 경이롭고도 따뜻한 작품은 19세기 프랑스의 자연주의 화가 레옹 오귀스탱 레르미트(Léon Augustin Lhermitte)가 그린 입니다.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