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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혼의 미술관

갓을 쓴 예수, 우리의 질고를 지시다

OCJ 2026. 7. 3. 03:29

서구의 르네상스 명화 속에서나 뵈었던 예수님이 낯설고도 친숙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계십니다. 금발 머리에 로마 시대의 겉옷을 두른 분이 아닙니다. 가시 면류관 대신 헝클어진 상투를 틀고, 갓을 벗은 채 무거운 십자가에 짓눌려 비틀거리는 조선의 청년. 그를 위협하는 이들은 창과 방패를 든 로마 병정이 아니라 포졸의 복장을 한 조선의 관원들입니다. 그 뒤를 따르며 애통해하는 여인들은 흰 한복 치마폭을 부여잡고 차마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운보 김기창 화백의 명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입니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화폭 너머로 화가 자신의 침묵과 시대의 비명이 동시에 들려오는 듯합니다. 어린 시절 청각을 잃고 영원한 고요 속에 살아야 했던 운보 김기창 화백은, 1950년 한국 전쟁의 참화를 피해 군산으로 피난을 떠납니다. 귓가에 대포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포화 속에서 쓰러져가는 민중들의 절망과 피비린내 나는 참상은 그의 영혼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절망의 한복판에서, 한 미국 선교사의 권유로 그는 예수의 생애를 한국화로 그려내기 시작했습니다. 운보의 붓끝에서 예수의 고난은 곧 전쟁으로 찢긴 우리 민족의 고난이 되었습니다. 고통받는 백성들과 깊이 연대하고자 했던 화가의 간절한 신앙적 고백은, 먹과 채색이 스며든 화선지 위에서 서구 기독교의 틀을 벗고 가장 한국적인 슬픔과 구원의 빛으로 피어났습니다.

우리 삶의 현실로 걸어 들어오신 성육신

이 그림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영적 울림은 바로 '성육신(Incarnation)'의 신비입니다. 복음은 결코 2천 년 전 이스라엘이라는 낯선 시간과 공간에 머물러 있는 화석화된 교리가 아닙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장 낮고 친숙한 모습으로 우리의 구체적인 현실 속으로 걸어 들어오셨음을 의미합니다.

운보가 그려낸 토착화된 예수는 복음의 본질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습니다. 조선의 흙먼지 날리는 길 위를 걷는 예수, 조선의 짚신을 신고 조선의 백성들을 위해 눈물 흘리는 예수는 "내가 바로 너희의 고통과 함께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서양의 성화가 때로는 우리와 거리가 먼 거룩하고 이상적인 신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상투를 튼 예수는 우리의 뼛속 깊이 스며있는 '한(恨)'과 민족적 정서를 고스란히 끌어안은 가장 다정하고 처절한 구원자의 모습입니다.

여백에 스며든 애통함, 그리고 함께 짊어지는 십자가

전통 수묵담채화 기법으로 그려진 이 화폭에는 동양화 특유의 여백의 미가 살아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의 여백은 단순한 빈 공간이 아니라, 십자가의 무게를 감당하는 예수의 거친 숨결과 백성들의 비통한 시선이 가득 채워진 영적 공간입니다.

십자가에 짓눌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예수의 몸짓을 묘사한 필선에는 묵직한 고통이 배어 있습니다. 예수를 따르며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린 여인들의 굽은 등은,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우리네 삶의 궤적과 닮아있습니다. 이 애절한 풍경은 서구의 그 어떤 성화에서도 느낄 수 없는 깊은 먹먹함을 자아냅니다. 주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그림 속 예수는 자신을 향해 울고 있는 조선의 여인들을 향해, 그리고 오늘날 화폭을 바라보는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려 깊은 위로의 눈빛을 건네고 있습니다.

오늘,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당신에게

갓을 벗고 상투가 흐트러진 채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질문과 위로를 동시에 던집니다. 

지금 여러분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경제적인 어려움, 무너진 관계,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 혹은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일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그 무게에 짓눌려 그림 속 예수님처럼 비틀거리고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줍니다. 우리가 짊어진 그 고단한 현실 한가운데로, 가장 친숙한 모습을 한 주님이 이미 찾아와 계신다고 말입니다. 

복음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방울 속에, 우리가 내쉬는 무거운 한숨 속에 상투를 튼 예수님이 함께 걷고 계십니다. 나의 삶과 우리의 문화 속에 육화되신 그 놀라운 사랑을 기억하십시오. 오늘 하루,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걷는 당신의 곁에서 주님이 그 짐을 함께 지고 계심을 믿으며, 다시 한번 일어서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따뜻한 새 힘을 얻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