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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민중의 식탁에서 웃고 계신 예수
[영혼의 미술관] 그림 앞에 서면, 어디선가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낡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필리핀의 어느 후미진 뒷골목, 하루의 고단한 노동을 마친 사람들이 허름한 식탁에 둘러앉아 시원한 맥주잔을 부딪치고 있습니다. 흙빛과 따뜻한 오렌지색이 주조를 이루는 화폭은 열대의 뜨거운 공기와 서민들의 사람 냄새를 훅 끼치게 합니다. 그런데 이 소박하고 왁자지껄한 술자리의 한가운데, 파안대소하며 우리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한 '동네 아저씨'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필리핀을 대표하는 현대 기독교 미술가 에마누엘 가리바이(Emmanuel Garibay)의 작품 <에마오(Emmaus)>는 우리가 익히 아는 성화의 공식을 유쾌하게 깨뜨립니다. 가리바이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빛이 쏟아지는 유럽의 대성당에서 예수를 찾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의가 만연한 필리핀의 척박한 현실 속에서, 그는 투쟁의 신학을 가슴에 품고 빈민가의 골목과 땀 냄새나는 일상의 한복판으로 캔버스를 옮겼습니다. 억눌리고 소외된 자들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진짜 얼굴을 찾고자 했던 화가의 치열한 고민은, 역동적이고 투박한 붓터치를 통해 고통 속에서도 결코 스러지지 않는 민중의 생명력으로 피어났습니다.
가리바이가 그려낸 이 파격적이고도 따뜻한 명화의 디테일 속으로 걸음을 옮겨, 우리 삶의 가장 낮은 곳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만나보려 합니다.
근엄함을 벗은 식탁, 함께 웃으시는 주님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된 예수의 모습은 대개 서구화된 이미지입니다. 창백한 피부에 금발, 머리 뒤로는 눈부신 후광이 비치고, 티 없이 맑은 옷을 입은 채 근엄하고 거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예수 말입니다. 그러나 가리바이의 <에마오> 속 예수는 후광도, 값비싼 옷도 입고 있지 않습니다. 구겨진 허름한 셔츠를 입고, 헝클어진 머리에 짙은 피부를 가진 그는 그저 평범한 노동자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것은 그의 '웃음'입니다. 입을 크게 벌리고 눈가에 주름이 지도록 활짝 웃는 예수의 표정은 신성모독이 아니라, 오히려 깊은 위로로 다가옵니다.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민중의 식탁에 합석하여, 그들의 퍽퍽한 이야기를 들으며 맥주를 들이켜고 함께 웃어주시는 주님. 이 과장된 듯 친근한 표정은 엄숙주의에 갇혀 있던 우리의 신앙을 뒤흔듭니다. 예수는 저 높은 하늘의 보좌에만 머무는 분이 아니라, 오늘 당신이 흘린 눈물과 작은 웃음 한가운데 이미 들어와 계시는 친밀한 동행자임을 그림은 웅변하고 있습니다.
고단한 삶을 어루만지는 투박하고 커다란 손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물들의 손이 유독 크고 투박하게 그려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관절은 굵고, 피부는 거칠며, 손등에는 핏줄이 툭 불거져 있습니다. 이는 결코 비례를 맞추지 못한 화가의 실수가 아닙니다. 가리바이는 이 커다란 손을 통해 하루하루 몸을 고단하게 움직여 생계를 이어가는 서민들의 노동과 애환을 상징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세상은 희고 매끄러운 손을 아름답다 칭송하지만, 가리바이는 흙먼지 묻고 굳은살이 박인 노동자의 손안에 깃든 '거룩함'을 보았습니다. 식탁 위에서 빵을 떼어 나누고 잔을 부딪치는 그 뭉툭한 손들은, 비루한 현실 속에서도 생명을 이어가려는 숭고한 의지입니다. 그리고 그 거친 손들을 마주 잡고 계신 예수의 손 역시 그들과 다를 바 없이 투박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상하고 잘 정돈된 모습뿐만 아니라, 땀방울과 눈물 자국이 얼룩진 삶의 치열한 흔적 그 자체를 거룩한 예배로 받아주십니다.
지극히 작은 자의 얼굴로 찾아오시는 예수
성경 속 '에마오'의 이야기는 절망에 빠진 두 제자가 낯선 나그네와 동행하다가, 식탁에서 빵을 떼어 나누실 때 비로소 그가 부활하신 예수임을 깨닫게 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가리바이는 2천 년 전의 그 식탁을 오늘날 필리핀의 빈민가로 고스란히 옮겨놓았습니다. 제자들이 곁에 걷던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도 정형화된 종교적 틀에 갇혀 우리 곁을 서성이는 예수를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그림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에마오는 어디입니까? 당신은 누구의 얼굴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합니까?" 가리바이는 참된 영성이란 고통받고 소외된 이웃의 얼굴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일상, 가장 평범하고 때로는 남루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자리야말로 하나님과 가장 깊이 교제할 수 있는 영혼의 성소인 것입니다.
오늘 하루, 숨 가쁘고 고단한 삶을 살아낸 당신에게 이 그림을 가만히 건네고 싶습니다. 당신의 지친 식탁 맞은편에 앉아,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파안대소하고 계실 그 동네 아저씨 같은 예수님을 상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높은 곳만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어 내 곁의 연약한 이웃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며 생동하는 '진짜 예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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