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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의 고요, 벼랑 끝에서 만나는 빛의 신비
렘브란트의 삶의 바다는 예고 없이 뒤집힙니다. 어제까지 평온했던 수평선은 순식간에 집어삼킬 듯한 파도로 변해 우리의 안락한 배를 흔들어 놓습니다. 렘브란트의 '갈릴래아 호수의 폭풍'은 단순히 성경의 한 장면을 묘사한 기록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생이라는 거친 바다를 지나는 모든 영혼이 겪어야 할 시련의 현장 보고서입니다.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기를 구가하던 렘브란트 판 레인은 빛을 통해 신의 섭리를 읽어내려 했던 사제와 같은 화가였습니다. 그가 이 작품을 완성했을 때 그는 겨우 20대 후반의 청년이었습니다. 세상의 명성과 부가 쏟아지던 시기였지만 그의 붓끝은 항상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는 성경 속의 기적을 박제된 신화로 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오늘 나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
진리의 기둥 아래 선 네 개의 영혼: 알브레히트 뒤러의 <네 사도>
알브레히트 뒤러의 고요한 화실의 공기 속에 뉘른베르크의 차가운 새벽빛이 스며듭니다. 거장은 붓을 내려놓고 자신이 평생을 바쳐 완성해온 예술의 여정을 되짚어봅니다. 그의 눈앞에는 성인이 된 사도들이 마치 살아있는 거인처럼 웅장하게 서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나무판 위에 그려진 그림이 아닙니다. 그것은 격변하는 시대의 한복판에서 예술가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마지막 고백이자, 길을 잃은 세상을 향해 던지는 간절한 외침입니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르네상스의 화려한 기교를 넘어서는 영적인 힘을 갈구했습니다. 그는 루터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영혼의 닻을 내리고자 했습니다. 뒤러는 독일이 낳은 가장 위대한 천재 중 한 명이었지만, 그의 내면은 늘 신앙적 갈증으로 목말라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
침묵으로 웅변하는 붉은 고독, 엘 에스폴리오
엘 그레코의 붉은색은 때로 비명보다 강렬한 언어가 됩니다. 화폭을 가득 채운 선명한 진홍빛 외투는 고난의 정점에서 피어난 고고한 생명의 불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숨 막히는 압박감 속에 서 있는 한 남자를 마주합니다. 그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만왕의 왕이시나 지금은 옷을 벗김 당하는 수치 앞에 서 계십니다. 엘 그레코는 평생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의 영혼을 가진 화가였습니다. 그는 본래 그리스 사람이었으나 이탈리아를 거쳐 스페인의 고도 톨레도에 정착했습니다. 그가 이 작품을 그릴 당시, 그는 낯선 땅에서 자신의 신앙과 예술을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습니다. 동시에 그는 보이지 않는 신의 세계를 가시적인 캔버스 위에 고정시키려는 거룩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신체를 ..
일그러진 얼굴에 담긴 영원한 긍휼: 조르주 루오의 <성안(Sainte Face)>
[영혼의 미술관] 어두운 방 안, 한 줄기 빛이 통과하는 오래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마주한 듯한 기분이 듭니다. 캔버스 위에는 굵고 투박한 검은색 윤곽선이 마치 납틀처럼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안으로 보석처럼 영롱하면서도 깊은 슬픔을 머금은 색채들이 채워져 있습니다. 프랑스의 표현주의 화가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가 그린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입니다. 유년 시절 스테인드글라스 장인의 견습생으로 일했던 루오의 손끝은, 훗날 캔버스 위에서 이렇듯 독창적이고 강렬한 시각적 언어로 피어났습니다. 20세기, 두 번의 세계대전과 인간의 끝없는 타락으로 얼룩진 비극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그는 평생을 독실한 가톨릭 신앙에 기대어 붓을 들었습니다. 영광스러운 왕의 모습이 아닌, 전쟁과 ..
[영혼의 미술관] 우리의 흙바닥으로 내려오신 하나님
성탄의 밤을 떠올려 보십시오. 우리의 머릿속에는 으레 서양의 어느 낡은 마구간, 푸른 눈과 금발을 가진 천사들, 그리고 이국적인 복장의 마리아와 요셉이 스쳐 지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함께 거닐 '영혼의 미술관'에는 조금 낯설고도 몹시 친숙한 풍경이 걸려 있습니다. 비단 위에 은은하게 스며든 수묵 담채의 색감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익숙한 흙냄새와 지푸라기 내음이 코끝을 맴도는 듯합니다. 운보 김기창 화백의 은 먼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이 아닌, 조선의 어느 소박한 초가집 외양간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화폭 속 요셉은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채 경건히 무릎을 꿇고 있으며, 마리아는 정갈한 쓰개치마를 두르고 짚더미 위에 누운 아기 예수를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의 곁에는 서양의 구유..
잔혹한 폭력 앞에 침묵하시는 어린 양,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의 '그리스도의 조롱'
어둡고 억압적인 공기가 흐르는 방, 차마 두 눈을 뜨고 바라보기 힘든 참혹한 폭력의 현장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화면의 중심에는 거친 천으로 두 눈이 가려진 채 결박당한 한 남자가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습니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은 악의로 일그러져 있고, 그들의 과장되고 역동적인 몸짓은 인간 내면 밑바닥에 도사린 잔혹성을 적나라하게 뿜어냅니다. 르네상스 시대 독일의 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Matthias Grünewald)가 남긴 명화 입니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알브레히트 뒤러가 완벽한 비례와 르네상스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그뤼네발트의 시선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치기 직전의 혼란스러운 시대상 속에서, 그는 인간의 추악한 죄악..
군중의 함성 앞에서의 진실
[영혼의 미술관]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예루살렘의 어느 웅장한 발코니, 우리는 지금 그곳의 기둥 뒤에 숨어 숨죽인 채 한 장면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발아래 광장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인파가 운집해 있고, 그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의 함성이 귓가를 때리는 듯합니다. 19세기 스위스 태생의 이탈리아 화가 안토니오 치세리(Antonio Ciseri)의 명화, 는 이처럼 관찰자가 빌라도의 뒤편에 서 있는 듯한 파격적이고 독특한 후면 구도로 우리를 그날의 역사적 현장 한가운데로 초대합니다. 라파엘로의 우아한 고전주의와 당대의 치열한 사실주의를 결합한 치세리는 독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과거의 한 장면을 그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성경 속 역사적 순간이 마치 오늘 우리의 눈앞에서..
[영혼의 미술관] 어둠을 찢고 들어온 생명의 빛
무겁고 차가운 공기가 내려앉은 방, 그곳에는 차마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먹먹한 슬픔이 배어 있습니다. 짙은 어둠이 깔린 화면의 오른쪽, 슬픔에 잠긴 부모는 스스로를 어둠 속에 가둔 채 절망하고 있습니다. 침상 위에 창백하게 누워있는 어린 소녀는 이미 세상의 모든 빛을 잃어버린 듯 고요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 캄캄한 죽음의 방에, 어둠을 찢고 들어온 부드럽고도 강력한 빛이 있습니다. 바로 소녀를 향해 다가가 손을 뻗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러시아 리얼리즘의 거장 일리야 레핀(Ilya Repin)이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아카데미 시절에 완성한 명화, 입니다. 인물의 심리를 포착하는 데 탁월했던 레핀은 이 성경 속 기적의 장면을 단순한 종교화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림이 그려질 무렵, 레핀은 사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