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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찌르는 오만, 그 위태로운 축적의 끝
짙게 드리운 먹구름을 거칠게 뚫고, 나선형의 거대한 건축물이 기괴한 위용을 자랑하며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로마의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이 거대한 흙빛의 탑은 캔버스 전체를 압도하며 보는 이의 숨을 턱 막히게 합니다. 바로 16세기 네덜란드 르네상스의 거장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 the Elder)이 남긴 명작, 입니다. 그림 가까이 다가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대한 탑의 규모와는 대조적으로 개미처럼 작게 묘사된 수많은 노동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들 위에서 거만하게 지시를 내리는 니므롯 왕의 모습조차 대자연과 거대한 건축물 앞에서는 한없이 작고 초라해 보일 뿐입니다. 브뢰헬이 활동하던 16세기는 종교 개혁의 소용돌이와 스페인의 억압적인 통치가 맞물려 정치적, 종교적 혼란이 극..
평화로운 왕국을 향한 방주, 에드워드 힉스의 '노아의 방주'
하늘을 가득 메운 짙고 먹먹한 먹구름이 금방이라도 세상을 집어삼킬 듯 웅장하게 소용돌이칩니다. 임박한 심판과 재난의 무게가 화폭 너머로까지 전해지는 듯합니다. 그러나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하늘의 극적인 긴장감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경이로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다가오는 홍수를 피해 방주로 향하는 동물들의 행렬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고 장엄합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먼저 살겠다고 아우성치지 않습니다. 그저 두 마리씩 짝을 지어, 자신들을 구원할 방주를 향해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을 뿐입니다. 이 놀랍도록 평온한 그림은 미국의 소박파(Naïve art) 화가이자 독실한 퀘이커교 순회 설교자였던 에드워드 힉스(Edward Hicks, 1780~1849)가 1846년에 완성한 유화 '노아의 방주(No..
기쁨의 연대, 구원의 태동: 라파엘로의 '방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찬란한 빛을 캔버스 위에 수놓았던 거장, 라파엘로 산치오. 완벽한 조화와 균형미를 통해 신성한 아름다움을 지상에 구현하고자 평생을 헌신했던 그는 1517년경, 영적인 깊이와 따뜻한 인간애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걸작 '방문(The Visitation)'을 완성합니다. 당시 교황청을 위한 거대한 예술 프로젝트들을 주도하며 화가로서, 또 건축가로서 절정의 기량을 뽐내던 라파엘로였지만, 그의 시선은 웅장한 신전이나 권력자의 옥좌가 아닌 이스라엘 산골 마을의 소박한 만남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림 앞에 서면 화면 중심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두 여인의 모습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앳된 얼굴의 젊은 마리아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노년의 엘리사벳이 서로의 어깨와 손을 다정하게 어루만지고 ..
세속의 영광과 죽음, 그리고 숨겨진 구원: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한구석,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거대한 캔버스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16세기 북유럽 르네상스의 거장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이 남긴 걸작, 입니다. 그림 앞에 서면 가장 먼저 화려한 털코트와 비단옷을 입고 당당하게 서 있는 두 명의 젊은 프랑스 대사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들 사이의 2단 선반 위에는 지구본, 해시계, 천문학 도구, 수학 책, 그리고 류트와 찬송가 악보 등 당대 인간이 이룩한 최고의 지성과 과학, 예술을 상징하는 사물들이 너무도 정교하고 사실적인 색채로 놓여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홀바인은 잉글랜드 헨리 8세의 궁정 화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궁정의 중심에서 그는 누구보다 가까이 권력의 정점을 목격했지만, 동..
탐욕과 나태의 거울, 풍요 속의 빈곤을 묻다
16세기 플랑드르, 종교 개혁의 맹렬한 폭풍과 스페인의 강압적인 통치가 맞물려 유럽 전체가 격동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사회적, 영적 불안이 짙게 깔린 이 무거운 공기 속에서, 화가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 the Elder)은 전통적이고 거룩한 성화의 틀을 과감히 벗어던졌습니다. 대신 그는 시장 한구석, 평범한 사람들의 식탁, 그리고 인간 내면의 가장 부끄러운 민낯을 화폭에 담아내며 당대인들에게 뼈있는 영적 각성을 촉구했습니다. 그의 걸작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볼까요? 처음 그림을 마주하면 우스꽝스럽고 기괴한 식탐의 판타지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지붕은 둥글고 달콤한 파이로 덮여 있고, 울타리는 오동통한 소시지로 엮여 있습니다. 심지어 구운 돼지 한 마리는 등에 칼이 꽂힌 채 누..
광야의 우물가에서 만난 섭리, 윌리엄 다이스의 '야곱과 라헬'
메마르고 거친 모래바람이 불어오는 낯선 광야.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길을 걷다 마침내 발견한 오아시스처럼, 그림 한가운데 자리한 두 사람의 만남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촉촉하게 적십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화가 윌리엄 다이스(William Dyce, 1806~1864)가 그려낸 명화, 의 첫인상입니다. 다이스는 독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미술이 단순히 눈을 즐겁게 하는 장식품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영적인 진리를 전달하는 거룩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나자렛파와 초기 라파엘전파의 이념을 수용했던 그는 성경 속 사건을 그릴 때 역사적, 지리적 고증을 치밀하게 하면서도 인물들의 순수한 감정을 잃지 않으려 고군분투했습니다. 그의 붓끝에서 탄생한 이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인간의 흠결 위로 흐르는 주권적 은혜: 이크하우트의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다'
캔버스 위로 짙게 깔린 어둠 속, 한 줄기 따뜻한 황금빛이 스며들어 영원의 순간을 비춥니다. 눈이 먼 노년의 아버지는 떨리는 손을 뻗어 아들의 팔을 더듬고, 침상 곁에는 숨을 죽인 채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한 여인의 실루엣이 긴장감 있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빛과 어둠의 마술사 렘브란트의 가장 뛰어난 애제자였던 헤르브란트 반 덴 이크하우트(Gerbrand van den Eeckhout)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마치 성경 속 그 숨 막히는 현장에 초대된 듯한 착각에 빠져듭니다. 평생토록 독실한 신앙을 품고 살았던 이크하우트는 단순히 성경의 서사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강렬한 명암법인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화려한 행렬의 끝에서 만난 겸손: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박사의 행렬'
이탈리아 피렌체의 심장부,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의 좁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마기 예배당(Magi Chapel)에 들어서면 숨이 멎을 듯한 장관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좁은 공간의 세 벽면을 가득 채운 벽화는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한 거대한 퍼레이드입니다. 티 없이 맑은 청금석의 푸른빛과 눈부신 황금빛, 그리고 짙은 붉은색의 안료들이 뒤섞여 숨 막히는 색채의 향연을 이룹니다. 낙타와 표범 같은 이국적인 동물들, 금실로 수놓은 비단옷을 입은 피렌체의 시민들, 그리고 당대 유럽 최고의 권력과 부를 쥐고 있던 메디치 가문의 수장들이 한데 어우러져 화려한 행렬을 지어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대작을 완성한 화가는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베노초 고촐리(Benozzo Gozzoli)입니다. 그는 '천사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