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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상처를 품어 안는 동양적 용서의 풍경
맑고 투명한 푸른빛이 캔버스 위로 고요히 번져갑니다. 서양 거장들의 탕자 그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겁고 극적인 명암법 대신, 마치 새벽이슬을 머금은 듯한 수채화와 구아슈의 번짐이 우리의 시선을 부드럽게 사로잡습니다. 이 고요한 화폭의 중심에는 전통적인 인도 의상을 입고 맨발로 아들을 향해 한없이 몸을 굽힌 아버지가 있습니다. 길게 뻗어 아들을 감싸 안는 아버지의 두 팔은 캔버스의 구도를 지탱하며, 보는 이의 마음마저 그 따뜻한 품속으로 이끌어 들입니다. 이 아름답고도 낯선 풍경을 그려낸 이는 인도 출신의 기독교 화가 프랭크 웨슬리(Frank Wesley)입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문화권에서 태어난 그는 5대에 걸친 인도 기독교인 집안의 깊은 영적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인도의 무굴 세밀화..
닿을 듯한 손끝, 영원한 생명이 깨어나는 순간
스스로를 붓을 든 화가가 아닌, 대리석을 쪼는 조각가라 굳게 믿었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황 율리오 2세의 거스를 수 없는 강권으로 인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차갑고 높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아래 홀로 서야 했습니다. 시력이 쇠퇴하여 눈앞이 흐릿해지고, 물감이 뚝뚝 떨어지는 천장 밑 발판에 누워 온몸의 관절이 비명을 지르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무려 4년이라는 길고 외로운 인고의 시간 끝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독교 예술의 역작이 탄생하게 됩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면, 화면 우측에서 수많은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거대한 붉은 망토를 휘날리듯 다가오시는 역동적인 하나님의 모습이 시선을 압도합니다. 반면, 화면 좌측에는 방금 빚어진 듯한 ..
누추한 일상에 찾아온 거룩함
문을 열고 들어서면, 흙먼지 냄새가 묻어나는 듯한 어둑한 실내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금빛 찬란한 모자이크나 웅장한 대리석 기둥이 있는 화려한 성전이 아닙니다. 이곳은 19세기 독일 농촌, 가난한 노동자의 고단한 숨결이 배어 있는 누추한 집입니다. 그리고 이 초라한 공간 한가운데,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아 계십니다. 이 놀랍고도 낯선 성화를 그린 이는 19세기 후반 독일의 화가 프리츠 폰 우데(Fritz von Uhde)입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말 위에서 칼을 쥐며 호령하던 기병대 장교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깊은 개신교 신앙과 시대의 아픔을 바라보는 사회적 각성을 통해 군복을 벗고 붓을 쥐었습니다. 당시 종교미술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상화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만 묘사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
가장 낮은 곳에 비친 하나님의 얼굴
붉고 온기가 감도는 색조 위로, 거칠고 투박한 붓터치가 묵직한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화려한 장식이나 매끈한 기교 대신 질박한 흙냄새가 날 것만 같은 이 그림은, 늦은 나이에 신부가 된 독일의 가톨릭 사제이자 화가 지거 쾨더(Sieger Köder)의 작품 입니다. 은세공인이자 미술 교사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거대한 비극 속에서 전쟁의 참상과 포로 생활을 온몸으로 겪어내야만 했습니다. 생과 사가 교차하는 참혹한 철조망 안에서, 그는 인간이 겪는 극심한 고통과 소외된 자들의 슬픔을 깊은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궤적은 훗날 그가 사제가 되어 붓을 들었을 때, 철저하게 낮아지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는 짙은 영성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의 ..
흑인 여성의 얼굴을 한 그리스도, 경계를 허무시는 주님
[영혼의 미술관] 캔버스 너머에서 누군가 우리를 깊고 고요하게 응시하고 있습니다. 차분하고 묵직한 갈색조의 물감 속에서 배어 나오는 그 얼굴은, 우리가 그동안 익숙하게 보아왔던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백인 남성의 모습이 아닙니다. 두꺼운 입술과 짙은 피부색, 남성인지 여성인지 단정 지을 수 없는 신비로운 이목구비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의 얼굴을 띠고 있습니다. 심지어 머리 뒤로 빛나는 둥근 후광은 서양의 전통적인 금빛 테두리가 아닌,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통 깃털 장식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토록 낯설고 파격적이면서도 거룩한 평안을 자아내는 작품은 미국의 현대 기독교 미술가 자넷 맥켄지(Janet McKenzie)의 입니다. 주류 예술과 교회가 오랫동안 간과해 온 여성과 유색인종, 소외된 자들의 일상 ..
잔치의 기쁨을 회복하시다: 일상의 기적을 그리는 빛의 화가
눈을 감으면 캔버스 위로 번져가는 따뜻한 황금빛과 심장을 두드리는 강렬한 붉은색이 망막에 맴도는 듯합니다. 프랑스의 현대 종교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아르카바스(Arcabas, 본명 장 마리 피로)의 명화, ‘가나의 혼인 잔치(Les Noces de Cana)’ 앞에 서면 우리는 어느새 2천 년 전 갈릴리의 작은 마을, 잔치가 벌어지는 소박한 집 마당에 초대받은 손님이 됩니다. 아르카바스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붓을 든 종’이라 부르며 평생을 캔버스 앞의 수도자처럼 살았던 독실한 가톨릭 화가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휩쓸고 간 참혹한 폐허 속에서, 그는 상실과 고통에 짓눌린 세상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잿빛으로 변해버린 세상에 복음이 가진 본연의 기쁨과 영적인 위로를 색채로 전..
갓을 쓴 예수, 우리의 질고를 지시다
서구의 르네상스 명화 속에서나 뵈었던 예수님이 낯설고도 친숙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계십니다. 금발 머리에 로마 시대의 겉옷을 두른 분이 아닙니다. 가시 면류관 대신 헝클어진 상투를 틀고, 갓을 벗은 채 무거운 십자가에 짓눌려 비틀거리는 조선의 청년. 그를 위협하는 이들은 창과 방패를 든 로마 병정이 아니라 포졸의 복장을 한 조선의 관원들입니다. 그 뒤를 따르며 애통해하는 여인들은 흰 한복 치마폭을 부여잡고 차마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운보 김기창 화백의 명화, 입니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화폭 너머로 화가 자신의 침묵과 시대의 비명이 동시에 들려오는 듯합니다. 어린 시절 청각을 잃고 영원한 고요 속에 살아야 했던 운보 김기창 화백은, 1950년 한국..
민중의 식탁에서 웃고 계신 예수
[영혼의 미술관] 그림 앞에 서면, 어디선가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낡은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필리핀의 어느 후미진 뒷골목, 하루의 고단한 노동을 마친 사람들이 허름한 식탁에 둘러앉아 시원한 맥주잔을 부딪치고 있습니다. 흙빛과 따뜻한 오렌지색이 주조를 이루는 화폭은 열대의 뜨거운 공기와 서민들의 사람 냄새를 훅 끼치게 합니다. 그런데 이 소박하고 왁자지껄한 술자리의 한가운데, 파안대소하며 우리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한 '동네 아저씨'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필리핀을 대표하는 현대 기독교 미술가 에마누엘 가리바이(Emmanuel Garibay)의 작품 는 우리가 익히 아는 성화의 공식을 유쾌하게 깨뜨립니다. 가리바이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빛이 쏟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