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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밥상에 찾아온 낯설고도 친밀한 신비
[영혼의 미술관] 작품 앞에 서면, 가장 먼저 흙의 온기와도 같은 소박한 질감이 우리의 시선을 포근하게 감싸 안습니다. 거친 닥종이 위로 콩즙과 천연 안료가 스며들어 만들어낸 깊고 그윽한 색채는 화려한 서양식 캔버스와는 다른, 어머니의 품 같은 다정함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림 속 풍경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이내 유쾌하고도 경이로운 낯설음을 마주하게 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 속에서 보아왔던 웅장한 식탁, 서양의 빵과 포도주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정갈한 초밥과 생선, 그리고 사케가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식탁을 둘러싼 예수와 제자들 역시 유대의 전통 복장이 아닌, 우리에게 익숙한 동양의 전통 기모노를 입고 정겹게 둘러앉아 있습니다. 이 경이로운 작품은 17세에 기독교로 개종한 후, 평생..
붉은 대지 위에 피어난 평화의 인사
[영혼의 미술관] 작품 앞에 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캔버스를 가득 채운 강렬한 붉은색과 찬란한 황금빛의 향연입니다. 마치 서양 대성당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는 듯하지만, 그 형태를 조형하고 있는 굵고 검은 선들은 다분히 동양화의 힘 있는 붓 터치를 닮아 있습니다. 눈이 부시도록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이 색채들 속에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토록 환희에 찬 그림을 그린 화가 허치(He Qi)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우리는 깊은 먹먹함과 동시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중국 출신의 현대 기독교 화가인 그는 안타깝게도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폭력과 억압의 시대를 관통해야 했습니다. 칠흑 같은 강제 노동 수용소의 억압 속에서, 그는 몰래 성모 마리..
룻과 보아스, 일상의 들녘에 깃든 하나님의 섭리
[영혼의 미술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프랑스의 어느 늦여름 들녘, 이마에 맺힌 굵은 땀방울을 닦아내며 잠시 그늘에 모여 앉은 농부들의 숨소리가 캔버스 너머로 들려오는 듯합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의 1853년 작, 앞에 서면 우리는 흙내음 물씬 풍기는 어느 평범한 하루의 한가운데로 초대받게 됩니다. 평생토록 흙을 만지며 살아가는 농부들의 곁을 지켰던 밀레는, 그들의 고단하고 거친 일상 속에 깃든 숭고함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 화가였습니다.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그에게 노동은 결코 가난한 자들의 피할 수 없는 육체적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명을 이어가는 거룩한 행위이자, 땀방울로 올려드리는 '신성한 기도'였습니다. 밀레는 구약성경 룻기..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는 야곱: 교차된 두 손에 담긴 섭리
[영혼의 미술관] 1656년 암스테르담의 어느 어두운 방, 파산 선고를 받고 빚더미에 앉은 늙은 화가 렘브란트가 붓을 쥐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차례로 가슴에 묻고, 평생을 바쳐 이룬 세간살이마저 경매로 넘겨야 했던 참담한 시기.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캔버스 위에는 세상 그 어떤 풍경보다 따뜻하고 성스러운 황금빛이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년에 완성한 걸작 에는 숨을 거두기 직전,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노인 야곱이 침상에 기대어 앉아 있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시력을 잃어 초점이 흐릿해진 눈과 깊게 파인 주름진 얼굴에는 육신의 쇠락을 가볍게 뛰어넘는 깊은 영적 통찰이 형형하게 빛납니다. 야곱은 장자 므낫세가 아닌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오른손을 얹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시..
절망의 무덤을 비추는 부활의 빛: 고흐가 만난 '나사로'
[영혼의 미술관] 1890년 5월, 프랑스 남부 생레미의 정신병원. 창살 너머로 스며드는 한 줄기 빛에 의지한 채, 한 화가가 붓을 쥐고 캔버스 앞에 앉아 있습니다. 극심한 환각과 걷잡을 수 없는 우울증이 번갈아 찾아오며 그의 영혼을 무참히 흔들던 시기였습니다. 육체와 정신이 모두 무너져 내린 생의 가장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빈센트 반 고흐는 사랑하는 동생 테오가 보내준 렘브란트의 판화 '나사로의 부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본래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난 고흐는 청년 시절, 벨기에의 척박한 탄광촌 보리나주에서 빈민들을 돌보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던 헌신적인 평신도 사역자였습니다. 누구보다 뜨거운 기독교 신앙을 품고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했지만, 경직되고 차가운 제도권 교회의 외면과 거듭..
척박한 대지에 심는 생명의 약속,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
[영혼의 미술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어스름한 저녁, 하루의 끝자락에 선 대지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집니다. 그러나 화면의 중심을 가득 채운 한 농부는 피곤함도 잊은 채 거침없는 보폭으로 흙을 딛고 나아갑니다. 흙빛을 꼭 빼닮은 짙은 갈색과 투박하게 낡은 청색의 작업복은 그가 흘려온 땀방울의 무게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땅거미가 내려앉는 척박한 현실의 무게 속에서도, 그의 오른팔은 허공을 가르며 힘차게 생명의 씨앗을 흩뿌리고 있습니다. 이 압도적인 존재감의 농부를 화폭에 담아낸 이는 바르비종파의 대표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입니다. 독실한 신앙을 가진 노르망디의 농부 집안에서 태어난 밀레는 평생토록 흙과 땀의 가치를 존중했습니다. 그가 이 작품을 그릴 무렵, 파리는 팍팍한 빈곤과 잦은 ..
만종: 흙먼지 묻은 노동과 기도가 만나는 자리
[영혼의 미술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대지와 하늘을 부드러운 황금빛과 흙빛으로 물들이는 시간. 하루의 고단한 일과가 끝나는 그 즈음, 멀리서 은은한 저녁 삼종기도의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감자를 캐던 농부 부부는 약속이나 한 듯 하던 일을 멈추고 제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입니다. 맞잡은 두 손과 깊게 숙인 정수리 위로 하늘의 숭고한 정적이 내려앉습니다. 바르비종파의 거장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의 대표작, 이 우리를 초대하는 평안하고도 거룩한 저녁의 풍경입니다. 독실하고 근면한 농촌 가정에서 자라난 밀레의 시선은 언제나 가장 낮은 곳, 흙을 밟고 살아가는 평범한 농민들을 향해 있었습니다. 당대의 많은 화가들이 화려한 영웅의 서사나 극적인 성경의 기적을 화폭에 담기 원할 ..
부서진 세상에 스며든 은혜의 눈물
[영혼의 미술관] 캔버스 앞에 서면, 가장 먼저 깊고 푸른 심연이 우리를 압도합니다. 짙은 프러시안 블루와 밤바다를 닮은 색채들이 화면 위로 고요하게, 그러나 거세게 번져갑니다. 구체적인 사람의 얼굴도, 십자가의 형상도 보이지 않는 이 추상 회화 속에서 우리는 묘하게도 누군가의 먹먹한 슬픔을 마주하게 됩니다. 일본 전통화 기법인 니혼가(Nihonga)와 현대 추상 표현주의를 결합한 크리스천 예술가, 마코토 후지무라(Makoto Fujimura)의 작품 입니다. 수십 겹으로 칠해진 광물성 안료(미네랄 피그먼트)는 그저 캔버스에 표면에 머물지 않고, 빛을 머금었다가 뱉어내며 신비로운 깊이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짙은 푸름 위로 흩뿌려진 흰색 물감과 반짝이는 금박들은 마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