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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을 삼키고 영원을 입다: 부활 신앙이 여는 새로운 차원의 삶
멜 깁슨 감독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Passion of Christ)'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너무나도 처절하게 묘사하여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끔찍한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이 이야기의 끝이 아님을 압니다. 돌무덤의 견고함도 하나님의 생명을 가두어 둘 수 없었습니다. 영국 롬지(Romsey)의 한 수도원 벽속에서 856년 만에 발견된 장미 씨앗이 다시 꽃을 피웠듯, 생명은 그 어떤 억압보다 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 가지 깊은 신학적 통찰과 위로를 건냅니다. 1. 변화를 향한 눈부신 소망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을 통해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50절). 우리가 겪는 ..
“테텔레스타이(Tetelestai): 미완성 인생을 완성으로 이끄신 마지막 한마디”
천재 음악가 슈베르트는 ‘미완성 교향곡’을 남겼고, 수많은 거장 예술가는 끝내 마침표를 찍지 못한 작품들을 뒤로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 인간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무언가 분주하게 성취하며 산 것 같아도, 죽음의 문턱 앞에 서면 누구나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과 미련을 남기기 마련입니다. 서른셋이라는 청년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면, 세상은 그것을 ‘요절’이라 부르며 못다 핀 꽃봉오리라 안타까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가장 젊고도 완벽한 마침표를 찍으신 분이 계십니다.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 마지막 숨을 내뱉으며 외치신 예수님의 한마디, “다 이루었다(Tetelestai)!”입니다. 희랍어 ‘테텔레스타이’는 당시 일상에서 세 가지 의미로 쓰였습니다. ..
[고난주간 묵상2] “오늘, 그분과 함께 걷는 낙원의 시작”
1492년 이전, 스페인 지브랄탈 해협에는 “이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의 라틴어 표지판 ‘네 뿔루스 울트라’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그곳은 세상의 끝이었고, 그 너머는 오직 낭떠러지와 어둠뿐이라 믿었습니다. 우리 인생에게 ‘죽음’이 바로 그러합니다. 숨이 멎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에, 죽음은 인간이 마주하는 가장 참담한 절벽이 됩니다. 그러나 한 용기 있는 탐험가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표지판에서 ‘네(No)’라는 글자를 지워버렸습니다. ‘뿔루스 울트라’(Plus Ultra), 즉 “이 너머에 더 많은 것이 있다”는 희망의 선언으로 바뀐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들려주신 두 번째 말씀은 바로 우리 인생의 표지판을 바꾸는 위대한 선언입니다. 예..
[고난주간 묵상 칼럼] 망치 소리를 잠재운 긍휼의 절규: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고난주간, 우리가 머물러야 할 곳은 골고다 언덕의 중앙 십자가 앞입니다. 그곳은 인류의 증오와 광기가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 곳이자,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처절하게 확증된 장소입니다. 숨조차 쉬기 힘든 극한의 고통 속에서 예수께서 남기신 일곱 마디 말씀(가상칠언) 중 그 첫 마디는 놀랍게도 자신을 못 박는 자들을 향한 ‘용서’였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4)이 기도는 비명보다 강렬한 사랑의 절규였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무엇인지를 단번에 보여주는 선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언급하신 ‘저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손과 발에 거대한 못을 박은 로마 군병들,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고 조롱하던 관원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
상식의 경계를 넘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부활의 신앙으로
기네스북의 기록보다 놀라운 성경의 진실 사람들은 흔히 세상의 가장 경이로운 기록을 찾을 때 기네스북을 펼치곤 합니다.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 가장 키가 큰 사람, 혹은 가장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은 여인의 기록에 감탄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이들에게 진정한 ‘경이’는 기록의 수치가 아니라,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에서 생명을 이끌어내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생물학적으로 이미 ‘죽은 몸’과 같았습니다. 백 세와 구십 세라는 나이는 단순히 고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가능성이 완전히 단절된 상태를 상징합니다. 기네스북의 어떤 기록도 뛰어넘는 이 ‘불가능’의 현장에서 아브라함은 비로소 ‘부활 신앙’이라는 신앙의 정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부활 신앙..
인생이라는 건축 현장에서
우리의 하루하루는 어쩌면 거대한 건축 현장과 같습니다. 시간이라는 터전 위에 우리는 관계, 경력, 신앙, 인격이라는 재료들로 ‘나의 삶’이라는 집을 짓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설계도대로 멋지게 벽을 쌓아 올리며 뿌듯해하고, 어떤 날은 실수로 이미 쌓은 것을 허물며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집을 짓는 건축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인생 건축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모든 집의 유일하고 참된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초 위에 우리는 저마다 다른 재료로 집을 짓습니다. 어떤 이는 금이나 은, 보석같이 값지고 불에 타지 않는 재료를 사용하고, 어떤 이는 나무나 풀, 짚처럼 구하기 쉽지만 불에 타 사라져 버릴 재료를 사용합니다. 금, ..
누군가의 바나바가 되어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를 꿈꿉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사람들의 인정과 박수를 받으며, 자신의 이름이 빛나기를 바랍니다. SNS 시대는 이러한 욕망을 더욱 부추깁니다. 저마다 자신의 ‘퍼스널 브랜드’를 구축하고 더 많은 ‘팔로워’를 얻기 위해 애쓰는 세상에서, 기꺼이 다른 사람을 위한 조연이 되려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한 사람을 보여줍니다. 그의 이름은 ‘바나바’입니다. ‘위로의 아들’, ‘격려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별명을 가졌던 그는,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보다 다른 사람을 주인공으로 세워주는 데 자신의 삶을 기꺼이 드렸던 위대한 조력자였습니다. 모두가 과거의 행적 때문에 사울이라는 청년을 의심하고 배척할 때, 바나..
분주함을 넘어 지혜로움으로
우리는 역사상 가장 분주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때까지, 스마트폰은 쉴 새 없이 울리고 수많은 일정과 정보가 우리의 시간을 잘게 조각냅니다. 우리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더 빠른 길을 찾고, 더 효율적인 업무 방식을 배우며, ‘갓생(God-Life)’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합니다. 우리는 분명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지혜롭게’ 살고 있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단순히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라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마치 귀한 보물을 사들이듯,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그분의 뜻에 맞게 ‘구속(Redeem)’하라는 영적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