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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사망을 삼키고 영원을 입다: 부활 신앙이 여는 새로운 차원의 삶

멜 깁슨 감독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Passion of Christ)'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너무나도 처절하게 묘사하여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끔찍한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이 이야기의 끝이 아님을 압니다.
돌무덤의 견고함도 하나님의 생명을 가두어 둘 수 없었습니다. 영국 롬지(Romsey)의 한 수도원 벽속에서 856년 만에 발견된 장미 씨앗이 다시 꽃을 피웠듯, 생명은 그 어떤 억압보다 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 가지 깊은 신학적 통찰과 위로를 건냅니다.
1. 변화를 향한 눈부신 소망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을 통해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50절). 우리가 겪는 수많은 영적 갈등과 아픔은 사실 썩어질 육신과 영원한 성령 사이의 간극에서 기인합니다. 마음은 간절하나 육신이 약해 넘어지는 우리의 한계는 부활의 아침에 완전히 해소될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될 것입니다(51절).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는 그 순간, 우리의 겉사람과 속사람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하늘의 천사와 같은 영광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이유입니다.
2. 죽음을 삼킨 절대적 승리
동양의 성현 공자조차도 '삶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며 죽음 앞에 겸허히 멈춰 섰습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닙니다.
부활은 사망을 삼키고 승리합니다. 죽음은 이제 독이 빠진 독사요, 침이 없는 벌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슬픔과 이별의 고통은 부활의 소망 안에서 재회의 기쁨으로 승화됩니다. 다시는 눈물도, 애통하는 것도 없는 그 영원한 연합의 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3. 흔들리지 않는 신실함의 동력
부활은 막연한 미래의 약속에 그치지 않고, 오늘 우리의 손과 발을 움직이게 하는 강력한 동력이 됩니다. 바울은 부활의 영광을 논한 뒤, 결론적으로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신앙생활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천국을 향한 마라톤입니다. 때로는 보상이 더디고 육신이 지칠 때도 있지만,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는 자는 변덕을 부리지 않습니다. 88년간 한 교회를 신실하게 섬겼던 에피 링퀴스트(Effie Linquist)처럼,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부활을 믿는 자의 '신실함'입니다.
당신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오늘 당신이 흘리는 눈물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감당하는 사역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셨고, 그 생명은 지금 우리 안에서 역동하고 있습니다. '구경꾼'의 자리를 넘어 '헌신된 자'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부활의 신앙은 절망의 늪에서 우리를 건져 올려, 영원한 가치를 위해 오늘을 최선으로 살아가게 하는 가장 고귀한 능력입니다. 부활의 아침, 그 승리의 함성이 당신의 사역과 삶의 현장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58)
OCJ 편집실에서 김 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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