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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목회 칼럼

상식의 경계를 넘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부활의 신앙으로

OCJ|2026. 3. 29. 09:03

기네스북의 기록보다 놀라운 성경의 진실

 

사람들은 흔히 세상의 가장 경이로운 기록을 찾을 때 기네스북을 펼치곤 합니다.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 가장 키가 큰 사람, 혹은 가장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은 여인의 기록에 감탄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이들에게 진정한 ‘경이’는 기록의 수치가 아니라,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에서 생명을 이끌어내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생물학적으로 이미 ‘죽은 몸’과 같았습니다. 백 세와 구십 세라는 나이는 단순히 고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가능성이 완전히 단절된 상태를 상징합니다. 기네스북의 어떤 기록도 뛰어넘는 이 ‘불가능’의 현장에서 아브라함은 비로소 ‘부활 신앙’이라는 신앙의 정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부활 신앙에 이르는 두 가지 경로: 체험과 사색

 

아브라함이 가졌던 부활의 확신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막연한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깊은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습니다.

 

첫째는 ‘경험적 과정’입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이삭을 얻었습니다. 무(無)에서 유(無)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온몸으로 겪어낸 것입니다. 이 체험은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며,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다”는 실존적 고백으로 이어졌습니다.

 

둘째는 ‘논리적 사색의 과정’입니다. 이는 모리아 산에서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절망적인 명령 앞에 섰을 때 빛을 발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깊이 고민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 후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지금 그를 죽이라 하신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내가 이삭을 드려도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려내실 것이다.’ 이것은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Fidelity)에 근거한 치밀하고도 거룩한 논리의 산물이었습니다.

 

상식의 감옥에 갇힌 현대인의 신앙

 

오늘날 많은 성도가 부활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 삶의 현장에서는 부활이 없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신앙이 ‘상식과 이성’이라는 좁은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비기독교인도 공감할 수 있는 수준의 도덕이나 교양에 머무는 신앙은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없습니다.

 

일본의 사상가 우찌무라 간조의 말처럼, 성경에서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기적들을 모두 도려낸다면 남는 것은 오직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의 겉표지’뿐일 것입니다. 성경의 시작(창조)과 끝(심판과 재림) 자체가 이미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이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창조주를 믿는다면, 부활은 결코 불가능한 신화가 아닙니다.

 

칭의(Justification)와 부활: 소망의 근거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이 믿음이 그에게 ‘의(Righteousness)’로 여겨졌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의로 여겨졌다’는 말은 헬라어 문법적으로 볼 때, 수많은 의심과 흔들림의 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체적인 삶의 결론이 하나님을 향한 신뢰로 귀결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부활 신앙은 단순히 죽은 뒤에 다시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의 죄를 위해 내어줌이 되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삶입니다. 부활을 믿는 자는 현실의 불공평함과 고통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모순을 시정하시고 내세의 영광으로 갚아주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맺음말: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이를 믿는가

 

지금 당신의 삶은 ‘죽은 것과 같은’ 태(胎)의 상태입니까? 사방이 막혀 소망의 빛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지금도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상식의 수준을 넘어 하나님의 전능성 앞에 바로 설 때, 비로소 부활의 능력은 우리의 삶을 바꾸기 시작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나의 의로움이 되었음을 확신하며,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의 기쁨으로 오늘을 살아내는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OCJ 편집실에서 김 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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