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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누군가의 바나바가 되어

우리는 누구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를 꿈꿉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사람들의 인정과 박수를 받으며, 자신의 이름이 빛나기를 바랍니다. SNS 시대는 이러한 욕망을 더욱 부추깁니다. 저마다 자신의 ‘퍼스널 브랜드’를 구축하고 더 많은 ‘팔로워’를 얻기 위해 애쓰는 세상에서, 기꺼이 다른 사람을 위한 조연이 되려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세상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한 사람을 보여줍니다. 그의 이름은 ‘바나바’입니다. ‘위로의 아들’, ‘격려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별명을 가졌던 그는,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보다 다른 사람을 주인공으로 세워주는 데 자신의 삶을 기꺼이 드렸던 위대한 조력자였습니다.
모두가 과거의 행적 때문에 사울이라는 청년을 의심하고 배척할 때, 바나바는 그의 안에 있는 변화의 진정성과 위대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걸고 사울을 변호했고, 그를 예루살렘 교회의 일원으로 세워주었습니다. 바나바가 아니었다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 바울은 어쩌면 교회의 문턱에서 좌절한 채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놀라운 부흥을 이끌며 자신이 최고 지도자로 우뚝 섰을 때에도, 그는 그 영광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보다 더 큰 잠재력을 가진 바울을 기억해냈고, 직접 그를 찾아가 동역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역보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더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성경의 기록은 ‘바나바와 사울’에서 ‘바울과 바나바’로 순서가 바뀌지만, 그는 아마도 자신이 세운 동역자가 더 크게 쓰임 받는 것을 보며 질투가 아닌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시대는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보다, 묵묵히 팀을 위해 헌신하는 바나바를 더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우리 가정에는 서로의 가능성을 믿어주고 격려해 주는 바나바 같은 부모와 배우자가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누가 더 높으냐를 따지기보다, 이름 없이 빛 없이 섬기며 다음 세대를 세워주는 바나바들이 필요합니다.
잠시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나는 다른 사람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누군가 잘되는 것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사람입니까? 나는 다른 사람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세워주는 격려자입니까, 아니면 작은 실수에 날을 세우는 비판자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영향력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따르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나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세워지고 성장하느냐에 있습니다.
오늘, 주님이 나를 누군가의 ‘바나나’로 부르고 계신 음성에 귀 기울여 봅시다. 내가 먼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다른 사람을 풍성한 열매로 세워줄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가장 귀한 헌신으로 받으시고, 우리를 통해 당신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 거룩한 부르심에 ‘아멘’으로 응답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OCJ 편집실에서 김 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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