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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라는 겟세마네를 통과하지 않은 말씀은 '폭력'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AI)이 단 몇 초 만에 신학적으로 매끄럽고 문법적으로 완벽한 설교문을 출력해 내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기술의 진보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었지만, 역설적으로 '강단의 진정성'이라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우리를 세웁니다. 이제 설교자는 단순히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넘어, '그 말이 내 영혼을 먼저 관통했는가'라는 엄중한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목회자들에게 '십자가', '은혜', '사랑'과 같은 단어들은 가장 익숙한 도구인 동시에 가장 위험한 함정이기도 합니다. 이 거룩한 단어들은 때로 설교자 자신에게 일종의 '영적 면죄부'를 제공합니다. 정작 본인의 삶은 그 말씀 앞에 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적으로 정교한 용어들을 나열함으로써 스스로가 그 진리 안에 살고 있다는 착각..
깨어진 신뢰의 시대, 교회가 다시 '소망'의 언어가 되는 길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교회'라는 단어는 어떤 잔상을 남길까요?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교회는 시대의 등불이자 고뇌하는 지성인들의 안식처였으며, 사회 정의와 이웃 사랑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차갑습니다. 거리를 지나는 젊은이들의 무심한 시선과 온라인 공간을 가득 채운 냉소적인 반응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신뢰의 성적표가 그리 낙관적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화려한 건축물과 세련된 프로그램은 늘어났지만,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참된 소망'을 발견했다는 고백은 점점 희귀해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신뢰를 잃어가는 근본적인 원인은 '메시지의 부재'가 아니라 '존재 방식의 괴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믿는가'라는 교리적 선포(Kerygma)에는 치열했으나, 그 믿음이..
보이지 않는 전선: 일상의 평원을 지키는 영적 분별력
우리는 '전쟁'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대개 물리적인 충돌이나 화약 냄새 진동하는 전장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가장 치열한 전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개됩니다. 데이터의 흐름 속에 숨겨진 알고리즘의 전쟁, 여론을 움직이는 심리전, 그리고 한 개인의 가치관을 무너뜨리는 문화적 잠식 등이 그러합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갈등의 양상은 사실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한 가장 오래된, 그러나 가장 현대적인 주제인 '영적 전쟁'의 본질과 맞닿아 있습니다. 많은 현대인은 영적 전쟁을 중세 시대의 유물이나 초자연적인 공포 영화의 소재 정도로 치부하곤 합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은 결코 기이한 현상에 국한된 이벤트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의지가 교차하는 일상의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갈등의 시대, 성경에서 찾는 실천적 화해의 지혜
가정과 교회,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일터와 지역 사회 속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갈등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관계가 파괴될 수도,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견고해질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등이 만연한 이 시대에, 성경이 제시하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갈등 해결의 지혜는 무엇일까요? 기독교 저술가 헤더 톰린슨(Heather Tomlinson)의 분석과 세계적인 갈등 해결 전문가이자 '피스메이커(The Peacemaker)'의 저자인 켄 산데(Ken Sande)의 원리를 바탕으로,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로 살아가..
환불 불가, 영수증 없음: '인생 구독'이 아닌 '인생 언약'을 위하여
요즘 우리네 삶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단어 중 하나는 아마 ‘구독(Subscription)’일 겁니다. 영화도 구독하고, 반찬도 구독하며, 심지어 자동차까지 구독하는 시대죠.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구독 해지’ 버튼을 누르면 그만입니다. 위약금 조금 물더라도 내 취향에 안 맞는 서비스를 억지로 참아줄 현대인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구독의 논리'가 어느덧 신성해야 할 결혼 생활의 담벼락을 훌쩍 넘어오고 말았습니다. "살아보고 아니면 취소하지 뭐", "내 행복에 도움이 안 되는데 굳이?"라는 식의 가성비 논리가 부부 관계의 밑바닥에 흐르기 시작한 것이죠. 30년 넘게 강단에서 수많은 부부를 축복해 온 목회자의 눈에는, 요즘의 결혼이 ‘영원한 약속’보다는 ‘조건부 계약’에 가까워 보여 못내 씁..
영혼의 주파수: 우리가 머무는 언어가 곧 우리의 운명이 된다
현대 사회는 가히 '소리의 홍수' 시대라 할 만합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뉴스, SNS의 단편적인 문장들, 그리고 타인의 시선이 담긴 수많은 평가가 우리의 일상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정보가 넘쳐날수록 우리 영혼은 더욱 갈급해집니다. 수많은 소리 중 진정으로 나를 살리는 '생명의 언어'를 분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듣고 내뱉는 말은 단순한 공기의 진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내면 세계를 구축하는 설계도이자, 한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짓는 보이지 않는 조종키와 같습니다.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가 바뀌는 결정적인 순간들을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는 언제나 '누구의 말을 들었는가'라는 선택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위기의 순간이나 새로운 도..
물질과 성공을 넘어, 가정을 든든히 세우는 두 가지 영적 기둥: 사랑과 용서
가정을 향한 열심, 그 너머의 본질을 묻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는 다시금 '행복한 가정'의 정의를 되묻게 됩니다. 오세아니아를 비롯한 전 세계의 이민 사회에서 성도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헌신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자녀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고, 건강을 위해 좋다는 건강식품을 찾아 섭취하며, 경제적 안정을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분명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학적 통찰로 비추어 볼 때, 물질적 유족함과 자녀의 세속적 성공, 육체적 건강만으로는 가정의 진정한 평안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경제적 위기나 건강의 상실 앞에서 인간의 평안은 쉽게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비바람이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는 가정을 세우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영..
거실에서 시작되는 천국: 사랑의 ‘역지사지(易地思之)’와 그 실천적 영성
가장 작은 공동체, 가장 큰 성소(聖所) 성경의 수많은 장 중에서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의 찬가’로 불리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찬가가 울려 퍼져야 할 가장 일차적인 자리는 화려한 예배당이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부대끼며 살아가는 ‘가정’입니다. 기독교인은 세상 그 누구보다 자기 가족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 식구만 아는 이기주의도 경계해야 하지만, 밖에서는 성자처럼 추앙받으면서 정작 가정 안에서 사랑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그 영성은 자칫 ‘위선’이라는 모래 위에 세워진 성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정을 작은 천국으로 만드는 실천적 사랑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의 신발을 신고 걷는 일 사랑의 첫 번째 단추는 ‘입장 바꿔 생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