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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거실에서 시작되는 천국: 사랑의 ‘역지사지(易地思之)’와 그 실천적 영성

가장 작은 공동체, 가장 큰 성소(聖所)
성경의 수많은 장 중에서도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의 찬가’로 불리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찬가가 울려 퍼져야 할 가장 일차적인 자리는 화려한 예배당이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부대끼며 살아가는 ‘가정’입니다. 기독교인은 세상 그 누구보다 자기 가족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 식구만 아는 이기주의도 경계해야 하지만, 밖에서는 성자처럼 추앙받으면서 정작 가정 안에서 사랑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그 영성은 자칫 ‘위선’이라는 모래 위에 세워진 성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정을 작은 천국으로 만드는 실천적 사랑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요?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의 신발을 신고 걷는 일
사랑의 첫 번째 단추는 ‘입장 바꿔 생각하기’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는 것’(고전 13:5)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흔히 자기 입장이라는 좁은 창문을 통해 상대를 바라봅니다. 남편은 밖에서 겪는 치열한 생존 경쟁의 피로를 알아주길 바라고, 아내는 집안일과 육아라는 끝없는 노동의 고단함을 위로받길 원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신발을 신고 걷는’ 노력을 할 때, 가정의 비극적 오해는 멈추고 공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 ‘먼저 대접하는 긴 젓가락’
흔히 천국과 지옥의 차이를 ‘긴 젓가락’ 비유로 설명하곤 합니다. 1미터나 되는 긴 젓가락을 들고 나만 먹으려 하면 결국 굶주려 죽는 곳이 지옥이요, 그 긴 젓가락으로 상대의 입에 정성껏 음식을 넣어주어 모두가 풍성해지는 곳이 천국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황금률(Golden Rule)’의 핵심입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 성숙한 신앙인은 사랑을 구걸하지 않고 먼저 줍니다. 내가 먼저 용서하고, 내가 먼저 이해하며, 내가 먼저 기쁘게 하려 할 때 가정의 사과는 ‘나눔’이라는 풍성한 축복이 됩니다. 내 기분을 맞춰주길 기다리는 ‘유치원 신앙’을 벗어나, 상대의 기분을 먼저 헤아리는 ‘성숙한 사랑’으로 나아갑시다.
자존심을 꺾고 피어나는 ‘종노릇’의 신비
가정 내 갈등의 뿌리에는 대개 굳건한 ‘자존심’과 ‘교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은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고 권면합니다. 가족끼리 무슨 자존심이 필요하겠습니까?
바지가 길다는 아들의 말에 어머니, 아내, 누이가 서로 몰래 바지를 줄여 결국 반바지가 되어버렸다는 예화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비록 옷은 못 쓰게 되었을지언정, 서로를 섬기려 했던 그 마음들이 모여 그 집안은 웃음꽃이 피는 낙원이 되었습니다. 사랑은 나의 옳음을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기꺼이 ‘바보’가 되어 상대를 높여주는 자리입니다.
긍정의 눈, 실패한 베드로를 다시 세운 주님의 시선
마지막으로 사랑은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랍니다(고전 13:7).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는 말처럼, 사랑의 렌즈를 끼면 단점보다 장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자신을 배신하고 저주하며 도망쳤던 베드로를 찾아가 단점과 실수를 들추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며 다시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에게도 못자국 난 손을 보여주시며 그를 믿음의 사도로 회복시키셨습니다. 우리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의 부족함을 트집 잡기보다, 하나님이 그 영혼 안에 심어두신 보석 같은 장점을 찾아 칭칭(稱讚)해 줍시다.
사랑을 실현하는 보금자리로
세상에서 가장 삭막한 곳은 물질이 부족한 곳이 아니라 사랑이 없는 곳입니다. 이제 우리 성도들의 가정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고, 먼저 사랑을 주고, 겸손히 종노릇하며, 긍정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봅시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찬가가 성경 구절 속에만 머물지 않고, 여러분의 식탁 위에서, 거실 소파 위에서, 그리고 부부의 대화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천국의 보금자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고린도전서 13:4-5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 갈라디아서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 마태복음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OCJ 편집실에서 김 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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