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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영혼의 주파수: 우리가 머무는 언어가 곧 우리의 운명이 된다
현대 사회는 가히 '소리의 홍수' 시대라 할 만합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뉴스, SNS의 단편적인 문장들, 그리고 타인의 시선이 담긴 수많은 평가가 우리의 일상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정보가 넘쳐날수록 우리 영혼은 더욱 갈급해집니다. 수많은 소리 중 진정으로 나를 살리는 '생명의 언어'를 분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듣고 내뱉는 말은 단순한 공기의 진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내면 세계를 구축하는 설계도이자, 한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짓는 보이지 않는 조종키와 같습니다.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가 바뀌는 결정적인 순간들을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는 언제나 '누구의 말을 들었는가'라는 선택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위기의 순간이나 새로운 도약의 시기에 선 리더에게는 두 갈래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마련입니다. 하나는 오랜 연륜과 성찰에서 우러나온 '공감과 섬김의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혈기와 조급함에서 비롯된 '강압과 정복의 언어'입니다.
성숙한 지혜는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는 낮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조언합니다. 반면, 미성숙한 자아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거친 목소리에 매료되곤 합니다. 비극은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들어야 할 지혜의 권고를 외면하고, 듣지 말아야 할 탐욕의 속삭임을 선택할 때, 개인의 삶은 물론 공동체의 역사마저 분열과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주파수에 영혼의 채널을 맞추느냐가 곧 우리 인생의 항로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언어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 인간의 말 또한 무형의 가능성을 유형의 현실로 만들어내는 '창조적 힘'을 지닙니다.
심리학과 뇌과학의 연구는 이 신학적 통찰을 흥미롭게 뒷받침합니다. 인간의 뇌는 반복해서 듣는 말에 따라 신경 회로를 재구성합니다. "너는 안 된다"는 부정의 낙인은 실제로 그 사람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감옥이 되지만, "너는 소중하며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격려의 선언은 잠들어 있던 거인을 깨우는 생명수가 됩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꽃을 피워낸 위대한 인물들의 뒤에는 언제나 그들의 단점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먼저 읽어주고, 그것을 믿음의 언어로 들려준 '축복의 통로'가 있었습니다. 현실의 수치는 비관적일지라도, 그 너머의 소망을 노래하는 어머니의 음성이 한 아이의 뇌 구조를 바꾸고 종국에는 인생 전체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사례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믿음의 언어는 보이지 않는 것을 실상으로 만드는 연금술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설파했습니다. 여기서 '들음'이란 단순히 고막을 울리는 소리를 넘어,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를 인정하는 '영적 경청'을 의미합니다. 우리 영혼이 건강해지려면 무엇보다 '언어의 식단'을 점검해야 합니다. 비난과 불평, 냉소와 저주의 언어는 영혼을 병들게 하는 독소와 같습니다. 반면 찬양과 감사, 격려와 소망의 언어는 영혼을 소생시키는 신령한 양식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과 시련도 실상은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기 위한 '거룩한 멈춤'의 시간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소란을 잠재우고 고요히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비로소 나를 향한 온전한 계획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는 내 요구를 관철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어가 내 영혼의 중심에 자리 잡도록 자리를 내어드리는 시간입니다.
오늘 당신의 귀에는 어떤 말들이 머물고 있습니까? 그리고 당신의 입술에서는 어떤 문장들이 흘러나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해야 합니다. 나를 무너뜨리고 공동체를 가르는 파괴적인 소리에 동조할 것인지, 아니면 비록 작고 희미할지라도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하늘의 언어를 선택할 것인지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머무는 언어가 곧 우리의 인격이 되고, 우리가 선택한 목소리가 곧 우리의 운명이 됩니다. 절망의 언어 앞에 소망의 방어벽을 세우십시오. 비난의 화살 앞에 용서와 축복의 방패를 드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리는 말'을 선택할 때, 우리 주변의 거친 광야는 어느새 향기로운 에덴의 정원으로 변모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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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잠언 18:21)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17)
OCJ 편집실에서 김 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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