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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깨어진 신뢰의 시대, 교회가 다시 '소망'의 언어가 되는 길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교회'라는 단어는 어떤 잔상을 남길까요?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교회는 시대의 등불이자 고뇌하는 지성인들의 안식처였으며, 사회 정의와 이웃 사랑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차갑습니다. 거리를 지나는 젊은이들의 무심한 시선과 온라인 공간을 가득 채운 냉소적인 반응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신뢰의 성적표가 그리 낙관적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화려한 건축물과 세련된 프로그램은 늘어났지만,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참된 소망'을 발견했다는 고백은 점점 희귀해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신뢰를 잃어가는 근본적인 원인은 '메시지의 부재'가 아니라 '존재 방식의 괴리'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믿는가'라는 교리적 선포(Kerygma)에는 치열했으나, 그 믿음이 삶의 양식으로 번역되는 '성육신적 삶'(Incarnational Living)에는 서툴렀습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가장 낮은 곳의 언어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분입니다. 그분은 정죄의 논리가 아닌, 공감의 눈물로 세상을 치유하셨습니다.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교회의 위기는 '권력화'와 '배타성'에서 기인합니다. 세상이 교회를 향해 등을 돌리는 이유는 우리가 전하는 진리가 틀려서가 아니라, 그 진리를 담아내는 그릇인 우리의 삶이 세속적 가치관과 다를 바 없거나 오히려 더 폐쇄적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소망은 높은 강단에서 선포되는 구호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에 깊이 연루되는 '낮은 곳의 환대'에서 시작됩니다.
교회가 다시 세상의 소망이 되기 위해서는 '성공'의 문법을 버리고 '십자가'의 문법을 회복해야 합니다. 현대 사회는 무한 경쟁과 효율성, 각자도생의 논리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교회가 보여주어야 할 대안적 모습은 '대조 사회(Contrast Society)'로서의 정체성입니다.
세상이 일등만을 기억할 때 교회는 소외된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세상이 소유의 크기로 가치를 증명할 때 교회는 나눔의 기쁨으로 풍요를 정의해야 합니다. 특히 미래 세대는 '설명하는 교회'보다 '보여주는 교회'를 갈망합니다. 그들은 목회자의 유창한 설교보다,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직하게 고통받는 이들 곁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의 뒷모습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합니다. 소망은 논증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 되는 길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건물의 담장을 낮추는 것을 넘어, 우리 마음의 문턱을 낮추는 일입니다. 세상의 비판을 아프게 경청하되 비굴해지지 않으며, 복음의 절대성을 고수하되 태도는 더없이 유연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박수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세상을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세상을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가 자신의 생존을 걱정하기보다 이웃의 안녕을 먼저 걱정할 때, 비로소 세상은 교회를 향해 다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들이 가진 그 평안과 소망의 이유는 무엇입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때 비로소 교회는 다시금 이 땅의 어둠을 밝히는 가장 따뜻한 소망의 언어가 될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4, 16)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12)
OCJ 편집실에서 - 김 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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