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WORD

예레미야애가 3장 22-23절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Today
Admin

뉴스

더보기 →

전체 글

목회/QT

인생이라는 두 갈래 길,그 최종 목적지를 향한 안내서

[시편 1:1-6]¹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²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³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⁴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⁵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⁶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들어가며: 인생의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울 것인가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어떤 옷을 입을까 하는 사소한 고민부터 어떤 길을 가야 할까 하는 중대한 결정까지..

2025.12.28
목회/목회 칼럼

빌려 온 믿음으로는 살 수 없다

아이의 손을 잡고 수영장에 처음 갔던 날을 기억합니다. 아이는 물을 무서워하면서도 아빠의 손을 꼭 붙잡고 물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빠가 든든하게 받쳐주는 한, 아이는 물 위에서 웃고 떠들며 즐거워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수영은 언제 시작될까요? 아빠가 살며시 손을 놓는 순간, 아이가 제 힘으로 물을 저으며 첫 발을 내디딜 때입니다. 그 순간의 두려움을 이겨내야만, 아이는 비로소 물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도 이와 참 많이 닮았습니다.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우리는 공동체라는 따뜻한 품 안에서, 혹은 부모님이나 신앙 선배라는 든든한 손에 이끌려 믿음의 세계로 들어옵니다. 그들의 기도와 격려, 뜨거운 찬양과 은혜로운 설교는 우리를 안전하게 붙들어 줍니다. 그 품 안에서 우리는 영적인..

2025.12.28
목회/목회 칼럼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주님, 그 세미한 음성으로

저는 요즘,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알 수 없는 깊은 피로감과 때로는 무력감에 휩싸이곤 합니다. 마치 끝없이 달려야 하는 마라톤 같기도 하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파도에 허우적거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제 마음 한구석에는 늘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마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때로는 영적인 거인이라 불리던 엘리야마저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음을 갈망할 정도로 깊은 낙심에 빠졌던 것처럼요. 지친 육신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엘리야의 이야기는 저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갈멜산에서 그토록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던 선지자가 고작 이세벨의..

2025.12.28
목회/목회 칼럼

골짜기 저편의 약속

우리는 모두 길 끝에 서 있는 낭떠러지를 두려워합니다. 삶이라는 여정의 끝, ‘죽음’이라는 이름의 그 벼랑은 피할 수 없기에 더 큰 공포로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이를 그곳에서 떠나보낸 이의 가슴에는 시린 바람만 맴돌고, 언젠가 홀로 그 길을 걸어야 할 우리 모두는 막연한 불안에 잠 못 이룹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이 모든 고통과 슬픔은 대체 왜 존재하는 것이냐고, 이 어둡고 외로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R.C. 스프룰의 책은 이 절박한 질문에 대해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대답을 속삭입니다. 어쩌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마지막 소명(Calling)’일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실패나 패배, 혹은 사탄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이가 정해두신 여정의 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

2025.12.28
목회/목회 칼럼

빛과 어둠의 싸움, 세상의 이야기가 성도에게 던지는 질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모든 크리스천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요즘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드라마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화려한 K팝 스타들이 밤에는 악마를 사냥한다는 파격적인 내용 때문에, 어떤 성도님들은 흥미롭게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세속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을 신앙인이 봐도 되는가’ 하는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저는 이 문화 현상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시대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뿐만 아니라, 때로는 세상의 문화를 통해서도 당신의 백성에게 질문을 던지시고, 우리가 사는 시대의 영적 실상을 보게 하십니다. 이 드라마는 바..

2025.12.28
목회/목회 칼럼

보이지 않는 곳에 집을 짓는 지혜

어느 날 문득, 매일 보던 익숙한 벽에 실금 하나가 보일 때가 있습니다. 처음엔 눈을 의심합니다. 페인트가 조금 벗겨진 것이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합니다. 하지만 그 균열은 사라지지 않고, 아주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그 위에 예쁜 그림을 걸어 가려보기도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애써 외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의 불안함은 감출 수 없습니다. 저 균열이 혹시 집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는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우리의 삶과 신앙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하는 아침입니다.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어 보입니다. 주일이면 교회에 나오고, SNS에는 감사와 은혜의 기록들이 쌓여갑니다.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가정도 평온해 보입니다. 우리는 성공과 ..

2025.12.28
목회/목회 칼럼

희망을 조각하는 기술, 인내에 대하여

우리는 ‘빨리빨리’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즉석식품, 당일 배송, 실시간 소통에 익숙해진 나머지, 기다림의 미학을 잃어버린 지 오랩니다. 이런 세상에서 ‘인내’라는 단어는 종종 답답하고 수동적인, 시대에 뒤처진 가치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그저 꾹 참고 견디는 것,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소극적인 체념 정도로 오해받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보브나르그는 “인내는 희망을 갖기 위한 기술이다”라는 짧은 문장으로, 우리가 가진 통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습니다. 그는 인내를 체념이 아닌 ‘기술(art)’로, 기다림을 절망이 아닌 ‘희망’의 한 형태로 정의합니다. 이 문장은 인내가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가장 적극적이고 용기 있는 정신 활동임을 일깨워줍니다.인내는 멈춤이 아니라, 가장 치..

202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