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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세계의 질서, 우리는 어디에 닻을 내릴 것인가
[OCJ 논설] 주요 이슈: 중동 전쟁(미국-이란 갈등)의 장기화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내부 균열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 위기 및 증시 폭락 우려 2026년 5월의 문턱에서, 세계는 깊은 불안의 안개에 휩싸여 있다. 최근 국내외 주요 뉴스를 장식한 것은 이란과 미국의 깊어지는 중동 갈등과 그로 인한 막대한 경제적 출혈, 그리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내부의 이례적인 대균열로 촉발된 이른바 '5월 폭락장(Sell in May)'에 대한 공포다. 경제 지표와 군사력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삐걱거리자, 전 세계의 시장과 시민들은 다가올 인플레이션과 지정학적 위기 앞에 숨을 죽이고 있다. 신학적 렌즈로 이 현상을 들여다보면, 이는 단순한 경제 불황이나 정치적 갈등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현대 ..
'북한'인가 '조선'인가… 호칭의 정치학 너머 '화해의 복음'을 묻다
[OCJ 논설] 주요 이슈: 남북한 호칭 논쟁('북한' vs '조선')과 50% 아래로 떨어진 통일 의식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북한을 향한 호칭 논쟁이 뜨겁다. 2026년 5월 언론 보도에 따르면, 기존의 '북한'이라는 명칭 대신 상대의 공식 국호인 '조선'으로 부르며 실체를 인정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동시에 통일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국민이 역대 최저치인 49%로 떨어졌다는 조사 결과는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통일에 대한 당위성보다는 현실적인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북한 역시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는 70년 넘게 이어진 분단의 피로감과 깊어가는 단절이 낳은 서글픈 시대상이다. 정치적, 외교적 차원에서 '두 국가'..
100만 ‘돌봄 공백’ 시대, 교회가 마주한 이웃 사랑의 참된 본질
[OCJ 논설] 주요 이슈: 국내에서 20년 후 돌봄 인력이 100만 명 가까이 부족해진다는 경고가 제기되며, 초고령화 시대의 돌봄 시스템 붕괴 위기가 주요 사회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년 후 돌봄 인력이 100만 명 가까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암담한 경고에 직면해 있다. 초고령화 사회로의 급격한 진입 속에서, 인간의 생존과 존엄에 필수적인 '돌봄'의 생태계가 붕괴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경제적 효용성으로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현대 사회의 차가운 논리 속에서, 누군가를 돌보고 또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인간의 필연적 연약함은 점차 사회적 비용이자 골칫거리로 치부되고 있다.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작금의 돌봄 위기는 단순한 인구 구조 변화나 노동력 부족의 문제를..
무너진 권력의 바벨탑과 역사의 주관자
최고 권력의 정점에 섰던 이가 다시 한번 차가운 법의 심판대 앞에 섰다. 2026년 4월 29일, 헌정 질서를 흔들었던 지난 2024년 12월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와 관련하여 전직 대통령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7년의 중형이 선고되었다. 일국의 지도자가 스스로 권력의 감옥에 갇혀 역사의 죄인으로 전락한 모습은, 단순히 한 정치인의 비극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에 깊은 탄식과 무거운 영적 성찰을 요구한다. 인간에게 쥐어진 '권력'이란 본디 날 선 검과 같아서, 자신을 비우고 이웃을 향해 엎드리지 않으면 결국 스스로를 찌르고 만다. 무소불위의 힘을 통해 국면을 전환하고 통치권을 강화하려 했던 시도는, 도리어 거센 국민적 저항과 법의 준엄한 심판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우리는 이 역사적 현장에서 하늘 높..
'사람 없는 사회'를 향해 질주하는 시대, 성육신의 온기가 그립다
AI 기술 발전으로 인한 '사람 없는 소비' 현상 확산 (AI 결제 월 236만 건 돌파)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AI가 직접 결제하는 시스템 이용 건수가 한 달에 236만 건에 달하며 이른바 '사람 없는 소비'가 완벽한 일상의 현실이 되었다고 한다.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일상적인 접촉마저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로 대체되는 이 2026년의 풍경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빠르게 대면의 흔적을 지워가는 무인화(無人化) 시대로 진입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무결점의 효율성과 편리함이라는 현대사회의 거대한 우상 앞에서 인간과 인간이 얼굴을 마주해야만 했던 필수불가결한 자리들은 점차 증발하고 있다.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본질적으로 '관계적 존재(Relational Being)'로 지음 받았다. 삼위..
홀로 머무는 고독의 방에서, 함께 거하는 사랑의 잔치로
중년 이후 홀로 지내는 시간은 때로 깊은 평안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만의 세계에 갇히기 쉬운 유혹이 되기도 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음을 창조 때부터 선포하셨습니다. 관계의 단절은 육체적인 편안함을 줄 수 있으나, 영혼은 타인과의 부대낌 속에서 깎이고 다듬어지는 성화의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고독이 자기 연민이나 고립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의도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어 타인의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습관과 취향이 견고해지면서, 타인의 다름을 용납하기보다 내 기준에 맞추려는 이기적인 자아가 고개를 듭니다.그러나 복음의 핵심은 자기 부인에 있습니다. 나를 위해 쌓아 올린 견고한 성벽을 허물고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진정한 사귐..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의 점수표: 정직과 손해 감수
시원한 바람이 참 좋은 아침입니다. 오랜시간 함께 운동을 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모임의 명칭은 골목회라 부릅니다. 골프를 치는 목회자 모임이란 뜻이지요. 골프는 흔히 '신사의 스포츠'라고 불리지요. 축구나 농구처럼 심판이 곁에서 일일이 지켜보며 호각을 불지 않기에, 선수 본인이 오직 양심에 따라 자신의 스코어를 적어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한 운동이지요.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우리는 친선 대회를 열고 함께 모여 필드 위를 걸으며 교제를 나누고 서로의 기량을 겨룹니다. 그런데 가벼운 친선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상패나 등수에 들고 싶은 마음에 '살짝 타수를 줄여 적어볼까?' 하는 얄궂은 유혹이 스쳐 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풀숲에 가려진 공을 슬쩍 꺼내놓고 치고 싶은 마음..
달콤한 위로만 찾는 시대, 우리에게 '쓴소리'를 해줄 이는 누구입니까?
오세아니아의 청명한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고요한 아침입니다. 오늘따라 유독 쌉쌀한 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 원고들을 살피다 보니, 문득 우리 삶의 관계와 소통에 대해 깊은 상념에 잠기게 됩니다. 목회자로, 또 저널의 편집장으로 오랜 세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대마다 마음이 흘러가는 방향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요즘 참 안타깝게 느껴지는 현상 중 하나는, 누군가 애정을 담아 건네는 '충고'를 마치 자신에 대한 '인격적 모독'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각박함입니다. 아플지라도 영혼의 약이 되는 쓴소리를 견디지 못하니, 사람들은 아예 자신에게 바른말을 해줄 수 있는 '지혜 있는 자' 곁으로 가지조차 않으려 합니다. 잠언의 말씀처럼, 거만한 자는 견책받기를 싫어하여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 않는 법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