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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부서진 세상에 스며든 은혜의 눈물
[영혼의 미술관] 캔버스 앞에 서면, 가장 먼저 깊고 푸른 심연이 우리를 압도합니다. 짙은 프러시안 블루와 밤바다를 닮은 색채들이 화면 위로 고요하게, 그러나 거세게 번져갑니다. 구체적인 사람의 얼굴도, 십자가의 형상도 보이지 않는 이 추상 회화 속에서 우리는 묘하게도 누군가의 먹먹한 슬픔을 마주하게 됩니다. 일본 전통화 기법인 니혼가(Nihonga)와 현대 추상 표현주의를 결합한 크리스천 예술가, 마코토 후지무라(Makoto Fujimura)의 작품 <그리스도의 눈물(Tears of Christ)>입니다.

수십 겹으로 칠해진 광물성 안료(미네랄 피그먼트)는 그저 캔버스에 표면에 머물지 않고, 빛을 머금었다가 뱉어내며 신비로운 깊이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짙은 푸름 위로 흩뿌려진 흰색 물감과 반짝이는 금박들은 마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방울 같기도, 짙은 어둠을 찢고 들어오는 거룩한 빛 같기도 합니다.
화가 마코토 후지무라가 이토록 깊은 슬픔과 빛을 동시에 화폭에 담아낸 데에는 그의 뼈아픈 삶의 궤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그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참혹하게 무너져 내린 쌍둥이 빌딩의 잿빛 먼지와 짙은 죽음의 냄새, 그리고 이웃들의 비통한 울음소리는 그의 영혼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 속에서 붓을 들 힘조차 잃었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요한복음 11장 속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무너진 세상의 한복판에서, 그는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함께 우시는 주님을 묵상하며 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깊은 어둠 속에 동참하시는 푸른 위로
이 그림에는 명확한 구상적 형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모호함은 오히려 우리의 상처를 투영할 수 있는 넓은 품이 되어줍니다. 겹겹이 쌓인 광물성 안료는 마치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켜켜이 쌓아온 슬픔의 지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것을 이미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이들의 통곡 앞에서 먼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 11:35). 이는 기독교의 신앙이 단순히 고통을 단숨에 없애버리는 마술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상실의 아픔을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화면 가득 번져가는 프러시안 블루의 색채처럼, 주님은 우리의 깊은 우울과 슬픔의 바다에 기꺼이 뛰어들어오셔서 그 눈물에 당신의 눈물을 보태십니다. 그림 위로 흩뿌려진 흰색 눈물방울들은 바로 이 완벽한 공감과 동참의 시각적 증거입니다.
상처가 영광이 되는 신비, 킨츠기(Kintsugi) 신학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푸른색과 흰색 사이로 스며든 영롱한 금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코토 후지무라의 예술 세계와 신앙을 관통하는 핵심 철학인 '킨츠기(Kintsugi)'를 상징합니다.
킨츠기란 깨어진 도자기의 틈을 천연 옻칠로 이어 붙인 뒤 그 위를 금가루로 장식하는 일본의 전통 복원 기법입니다. 서양의 복원이 상처를 감추고 새것처럼 보이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면, 킨츠기는 깨어진 상처 자체를 도자기의 역사로 인정하고 오히려 금을 더해 이전보다 훨씬 아름답고 고귀한 작품으로 재탄생시킵니다.
후지무라는 이 킨츠기를 신학적으로 풀어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야말로 가장 처참하게 부서진 그릇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의 몸에 남은 못 자국과 창 자국은 흉측한 흉터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한 영광의 흔적이 되었습니다. 그림 속 흩뿌려진 금박들은 산산조각 난 우리의 삶을 버리지 않으시고, 은혜라는 금으로 정성스레 이어 붙이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을 의미합니다. 상처는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이 스며드는 새로운 통로가 됩니다.
부서진 질그릇에 담긴 온전한 소망
우리는 모두 각자의 슬픔과 상실로 인해 여기저기 금이 가고 깨어진 질그릇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때로는 나의 깨어진 틈 사이로 새어 나가는 실패와 상처가 부끄러워 남들 몰래 숨기려 애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눈물>은 그런 우리에게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부서진 채로 나아와도 괜찮다고, 당신의 눈물 곁에 주님의 눈물이 함께 흐르고 있다고 말입니다.
오늘날 상처 입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그림이 주는 위로는 참으로 깊고 따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서진 조각들을 쓸어버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상처 난 자리를 은혜의 금줄로 이어 붙이시며, 우리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름다운 '킨츠기 도자기'로 빚어가고 계십니다.
지금 당장 내 삶이 부서진 세상의 파편처럼 느껴진다면, 잠시 눈을 감고 곁에서 함께 우시는 예수님을 묵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의 눈물과 주님의 눈물이 만나는 그곳에서, 상처가 영광이 되는 킨츠기의 기적이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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