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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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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혼의 미술관

가장 낮은 곳에 비친 하나님의 얼굴

OCJ 2026. 7. 8. 04:30

붉고 온기가 감도는 색조 위로, 거칠고 투박한 붓터치가 묵직한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화려한 장식이나 매끈한 기교 대신 질박한 흙냄새가 날 것만 같은 이 그림은, 늦은 나이에 신부가 된 독일의 가톨릭 사제이자 화가 지거 쾨더(Sieger Köder)의 작품 <발씻김(The Washing of the Feet)>입니다. 

 


은세공인이자 미술 교사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거대한 비극 속에서 전쟁의 참상과 포로 생활을 온몸으로 겪어내야만 했습니다. 생과 사가 교차하는 참혹한 철조망 안에서, 그는 인간이 겪는 극심한 고통과 소외된 자들의 슬픔을 깊은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궤적은 훗날 그가 사제가 되어 붓을 들었을 때, 철저하게 낮아지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는 짙은 영성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묘한 당혹감과 함께 벅찬 감동을 마주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제자의 발을 씻기시는 이 거룩한 장면에서, 정작 예수님의 모습은 화면 어디에도 직접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선을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 그림의 가장 낮은 곳을 향할 때에야 우리는 마침내 그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먼지 묻은 발을 씻기 위해 떠놓은 탁한 대야의 물속, 그 흙탕물 위에 비로소 십자가 후광을 두르신 예수님의 얼굴이 일렁이고 있습니다. 참된 신성(神性)은 가장 낮고 더러운 곳에 임한다는 역설적인 미학이, 이 한 폭의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강렬하게 말을 건네옵니다.

탁한 물속에 잠긴 거룩함, 케노시스(Kenosis)

이 그림의 가장 파격적이고 은혜로운 디테일은 단연 대야의 물속에 비친 예수님의 얼굴입니다. 화려한 왕좌나 높은 단상이 아닌, 타인의 오물을 씻어내기 위해 마련된 탁한 물속에 하나님의 얼굴이 깃들어 있습니다. 신학에서는 이를 **'케노시스(Kenosis)'**, 즉 철저한 '자기 비움'이라고 부릅니다. 

영광스러운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냄새나고 남루한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신 성육신의 신비가 이 작은 대야 속에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지거 쾨더는 이 투박한 붓질을 통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까?" 높은 곳, 화려한 곳, 깨끗하고 완벽한 곳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그분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지금 가장 낮은 곳, 우리의 더러운 현실 한가운데로 기꺼이 내려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황한 베드로의 표정, 우리의 부끄러움을 만지시는 손길

그림 속 베드로의 표정을 가만히 들여다보시길 바랍니다. 스승이 자신의 발을 씻기려 하자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한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고 있는 베드로의 붉어진 얼굴에는 "주여,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라며 만류했던 성경 속 그의 외침이 그대로 들려오는 듯합니다.

베드로의 이 당혹감은 어쩌면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도 꼭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나의 가장 그럴듯하고 깨끗한 모습만을 보여드리고 싶어 합니다. 내 삶의 냄새나는 상처, 숨기고 싶은 실패와 부끄러운 죄의 찌꺼기들을 들키고 싶지 않아 발버둥 칩니다. 하지만 물속에 비친 예수님은 묵묵히, 그리고 다정하게 우리의 가장 더러운 발을 두 손으로 감싸 쥐십니다. 참된 치유와 회복은 나의 오물을 씻어내기 위해 허리를 굽히신 그분의 사랑 앞에, 나의 가장 수치스러운 맨발을 내어어드릴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군림하는 권력이 아닌, 오물을 닦는 참된 리더십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라고 부추깁니다. 더 많은 권력을 쥐고,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여 타인 위에 군림하는 것을 성공이라 부릅니다. 교회와 크리스천들마저 때로는 세상의 이러한 '위로 향하는' 가치관에 휩쓸려,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권력자로서의 예수만을 좇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지거 쾨더의 <발씻김>은 권력과 성취에 목마른 현대인들에게 참된 리더십이 무엇인지 묵직하게 일깨워줍니다. 진정한 위대함은 누군가의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 엎드려 이웃의 더러운 발을 닦아주는 섬김에 있음을 말입니다.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거친 손으로 제자의 발을 씻기셨던 예수님의 모습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장 절실한 신앙의 본질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 치열한 일상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발끝에 먼지가 가득 묻은 채 지쳐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조용히 눈을 감고, 내 발을 닦아주기 위해 맑은 물이 든 대야를 앞에 두고 기다리시는 주님을 상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따뜻한 손길이 우리의 상한 영혼을 위로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로를 힘입어, 우리 역시 누군가의 지친 발을 닦아주기 위해 기꺼이 삶의 낮은 자리로 내려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그 서툴고 투박한 섬김의 물결 위로, 가장 아름다운 주님의 얼굴이 찬란하게 비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