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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보이지 않는 곳에 집을 짓는 지혜

어느 날 문득, 매일 보던 익숙한 벽에 실금 하나가 보일 때가 있습니다. 처음엔 눈을 의심합니다. 페인트가 조금 벗겨진 것이라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합니다. 하지만 그 균열은 사라지지 않고, 아주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그 위에 예쁜 그림을 걸어 가려보기도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애써 외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의 불안함은 감출 수 없습니다. 저 균열이 혹시 집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는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하는 아침입니다.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어 보입니다. 주일이면 교회에 나오고, SNS에는 감사와 은혜의 기록들이 쌓여갑니다.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가정도 평온해 보입니다. 우리는 성공과 안정이라는 예쁜 그림으로 삶의 벽을 화려하게 장식합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영혼의 집, 그 구조적 안정성은 얼마나 단단할까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미세한 균열, 작은 불안과 염려, 은밀한 죄와 타협의 실금들을 우리는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평온할 때는 그 균열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인생에 반드시 ‘폭풍의 날’이 온다고 경고하십니다. 예상치 못한 질병, 갑작스러운 관계의 파탄, 휘몰아치는 경제적 위기라는 거센 비바람이 우리의 삶을 강타하는 날입니다. 폭풍은 집을 무너뜨리는 원인이 아닙니다. 그저 집의 기초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남김없이 드러낼 뿐입니다. 화려하게 장식했던 그림들은 속절없이 떨어져 나가고, 애써 가렸던 균열은 순식간에 벌어져 집 전체를 삼켜버립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너의 집을 어디에 짓고 있느냐?”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쉽게 영적 양식을 얻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세계적인 설교가들의 말씀을 듣고, 수많은 신앙 서적과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우리는 ‘아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정작 ‘살아내는 것’에는 서툽니다. 말씀을 듣고 감동하는 것을, 기초 공사를 마친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반석은 ‘지식’이 아니라 ‘순종’이었습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만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불편한 선택입니다. 모두가 더 많이 가지려 할 때, 나누라는 말씀을 따라 지갑을 여는 것입니다. 분노와 혐오가 쉬운 시대에, 용서하라는 말씀을 붙들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성공과 효율이 유일한 가치가 된 세상에서, 정직과 성실이라는 오래된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골방에서 드리는 눈물의 기도, 내 자존심을 꺾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그 무릎,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땅속 깊이, 반석을 향해 파고드는 거룩한 노동입니다.
사랑하는 벗이여, 세월은 분주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우리 삶의 벽을 정직하게 들여다보았으면 합니다.
혹시 당신의 마음 벽에 작은 균열이 보이지는않으십니까? 그 작은 신호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시선을 화려한 벽지가 아닌, 보이지 않는 곳, 가장 낮은 곳, 우리의 기초로 돌려야 할 때입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말씀 한 구절을 앎으로 그치지 않고, 삶의 자리에서 살아내는 작은 순종을 시작해봅시다. 그 작은 순종의 벽돌 하나하나가 모여, 세상의 어떤 폭풍우도 감히 흔들 수 없는 견고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집을 세워갈 줄 믿습니다. 주님의 평안을 빕니다.
OCJ - 편집실에서 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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