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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목회 칼럼

희망을 조각하는 기술, 인내에 대하여

OCJ|2025. 12. 28. 11:21

 

우리는 빨리빨리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즉석식품, 당일 배송, 실시간 소통에 익숙해진 나머지, 기다림의 미학을 잃어버린 지 오랩니다. 이런 세상에서 인내라는 단어는 종종 답답하고 수동적인, 시대에 뒤처진 가치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그저 꾹 참고 견디는 것,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소극적인 체념 정도로 오해받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보브나르그는 인내는 희망을 갖기 위한 기술이다라는 짧은 문장으로, 우리가 가진 통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습니다. 그는 인내를 체념이 아닌 기술(art)’, 기다림을 절망이 아닌 희망의 한 형태로 정의합니다. 이 문장은 인내가 나약함의 증거가 아니라, 가장 적극적이고 용기 있는 정신 활동임을 일깨워줍니다.

인내는 멈춤이 아니라, 가장 치열한 활동이다

인내를 하나의 기술로 바라보는 순간, 세계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기술이란 연마하고 숙달해야 하는 능력입니다. 가만히 있는다고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씨앗을 심은 농부를 떠올려봅시다. 그는 싹이 트고 열매가 맺기를 기다리지만,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해를 가리는 장애물을 치우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움직입니다. 농부의 기다림은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적극적인 노동의 다른 이름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역경을 극복하려 할 때, 인내는 멈춰 서서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희망이라는 목표점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저항하고,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며,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 이 모든 것이 인내라는 기술에 포함된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그렇기에 인내하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며, 그 기술로 무엇이든 이뤄낼 힘을 가진 사람입니다.

고통은 어떻게 희망이 되는가

그렇다면 이 고된 인내의 기술을 발휘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바로 희망입니다. 신약성서의 한 구절,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말씀은 이 관계의 비밀을 풀어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희망이 단순히 인내의 전제조건일 뿐만 아니라, 인내의 과정을 통해 단련되고 생성되는 결과물이라는 놀라운 통찰을 발견하게 됩니다.

 

처음 우리가 품는 희망은 막연하고 연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의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연단된 인내는, 우리 내면에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라는 단단한 근육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 근육이야말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훨씬 더 견고하고 실체적인 희망의 토대가 되어 줍니다. , 인내는 고통이라는 원석을 끈기라는 도구로 다듬어 희망이라는 보석을 빚어내는숭고한 연금술과도 같습니다. 지금의 고난을 참고 이기는 것은, 마음속 희망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더 큰 희망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지금 당신의 삶이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느껴지십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속에서 희망의 빛이 희미해져 간다고 느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보브나르그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인내는 결코 수동적인 체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가장 용감한 싸움이자, 더 단단한 내일을 조각해나가는 위대한 기술입니다.

 

잘 견디어내는 사람이 항상 이기는 이유는, 그가 가진 인내라는 기술이 결국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참아낼 줄 아는 당신은, 이루지 못할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인내는 지금, 어떤 찬란한 희망을 빚어내고 있습니까?

 

OCJ - 편집실에서 Jose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