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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빌려 온 믿음으로는 살 수 없다

아이의 손을 잡고 수영장에 처음 갔던 날을 기억합니다. 아이는 물을 무서워하면서도 아빠의 손을 꼭 붙잡고 물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빠가 든든하게 받쳐주는 한, 아이는 물 위에서 웃고 떠들며 즐거워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수영은 언제 시작될까요? 아빠가 살며시 손을 놓는 순간, 아이가 제 힘으로 물을 저으며 첫 발을 내디딜 때입니다. 그 순간의 두려움을 이겨내야만, 아이는 비로소 물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도 이와 참 많이 닮았습니다.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우리는 공동체라는 따뜻한 품 안에서, 혹은 부모님이나 신앙 선배라는 든든한 손에 이끌려 믿음의 세계로 들어옵니다. 그들의 기도와 격려, 뜨거운 찬양과 은혜로운 설교는 우리를 안전하게 붙들어 줍니다. 그 품 안에서 우리는 영적인 평안과 기쁨을 누립니다. 참으로 귀하고 감사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주님은 우리 인생에 아빠가 손을 놓는 것과 같은 순간을 허락하십니다. 지금까지 나를 붙들어 주던 사람도, 뜨거운 집회의 열기도, 과거의 은혜 체험도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것 같은 광야의 한복판에 홀로 서게 되는 날입니다.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아이를 데려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던 아버지처럼,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던 모든 인간적인 방법과 노력이 무력하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바로 그때가 ‘빌려 온 믿음’의 유효 기간이 끝나는 때이며, ‘나의 믿음’이 시작되어야 할 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고치지 못한 아이를 보시며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한탄하셨지만, 그 아버지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문제의 소유주가 바뀌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제자들에게서,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마침내 ‘나의 주님’께로 그 문제의 소유권이 이전되기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아직도 다른 사람의 믿음에 기대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목회자의 기도, 배우자의 신앙, 공동체의 영성에 안주하며 정작 나 자신은 주님 앞에 단독자로 서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 나를 끝까지 붙들어 줄 믿음은, 결국 내 입술로 주님을 부르고 내 무릎으로 주님께 나아가 얻어낸 ‘나의 믿음’뿐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네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옮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태산 같은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작지만 진실한, 빌려 온 것이 아닌 나의 것인 그 믿음을 원하십니다.
이제는 두려워도 한 걸음 내디뎌야 할 때입니다. 기도의 자리가 어색하고, 금식은 엄두가 나지 않더라도, 나의 문제, 나의 아픔, 나의 절망을 있는 그대로 가지고 주님께 직접 나아갑시다. 주님 앞에 나의 작은 겨자씨 한 알을 심을 때, 주님은 그것을 자라나게 하사 내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산을 옮기는 기적의 나무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 은혜의 감격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OCJ- 편집실에서 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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