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더보기 →골짜기 저편의 약속

우리는 모두 길 끝에 서 있는 낭떠러지를 두려워합니다. 삶이라는 여정의 끝, ‘죽음’이라는 이름의 그 벼랑은 피할 수 없기에 더 큰 공포로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이를 그곳에서 떠나보낸 이의 가슴에는 시린 바람만 맴돌고, 언젠가 홀로 그 길을 걸어야 할 우리 모두는 막연한 불안에 잠 못 이룹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이 모든 고통과 슬픔은 대체 왜 존재하는 것이냐고, 이 어둡고 외로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R.C. 스프룰의 책은 이 절박한 질문에 대해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대답을 속삭입니다. 어쩌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마지막 소명(Calling)’일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실패나 패배, 혹은 사탄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이가 정해두신 여정의 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관점은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송두리째 바꿉니다.
죽음이 더는 낯선 침입자가 아니라, 우리를 본향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음성이라면, 우리는 분노와 원망 대신 고요한 순종으로 그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책은 다윗의 시편 한 구절을 우리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 보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움츠러드는 그곳은 칠흑 같은 어둠과 절망의 공간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두렵지 않다고 고백합니다. 왜일까요? 골짜기가 사라져서가 아닙니다. 그곳에 햇살이 비쳐서도 아닙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라고, 그는 노래합니다. 그의 손에는 나를 지키는 ‘지팡이와 막대기’가 들려있다고 말입니다.
여기에 고난과 죽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신앙은 고난을 없애주는 마술이 아닙니다. 골짜기를 평지로 만들어주는 기적도 아닙니다.
다만, 가장 깊고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 결코 혼자 걷게 두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내 손을 붙드신 목자의 지팡이는 구덩이에 빠진 나를 건져 올리고, 막대기는 나를 삼키려는 야수들을 물리칩니다. 그분의 임재야말로 우리가 이 고통스러운 터널을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힘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그분조차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고통을 피하고 싶은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 기도의 끝은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순종이었습니다. 그분은 쓴 잔을 피하게 해달라고 구했지만, 결국 그 잔을 주시는 아버지를 신뢰했습니다. 우리의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지만, 그 고난을 허락하신 분의 선하심을 신뢰할 때 비로소 무의미해 보였던 시간들이 구원을 향한 여정의 일부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은 마침내 우리를 골짜기 저편으로 인도합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다시는 죽음도, 슬픔도, 아픔도 없는 곳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흘렸던 모든 눈물과 신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고난과 죽음은 여전히 우리에게 두려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 우리를 지키는 목자가 함께 걷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골짜기는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진 통로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조금 더 담담하게 우리의 마지막 소명을 마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낭떠러지인 줄 알았던 그곳은 사실, 더 좋은 본향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문이었기 때문입니다.
OCJ - 편집실에서 Joseph
'목회 > 목회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빌려 온 믿음으로는 살 수 없다 (0) | 2025.12.28 |
|---|---|
|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주님, 그 세미한 음성으로 (0) | 2025.12.28 |
| 빛과 어둠의 싸움, 세상의 이야기가 성도에게 던지는 질문 (0) | 2025.12.28 |
| 보이지 않는 곳에 집을 짓는 지혜 (0) | 2025.12.28 |
| 희망을 조각하는 기술, 인내에 대하여 (1) | 2025.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