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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겟세마네의 잠을 깨우라

우리에게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밀려올 때, 우리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그 현실을 외면하려 합니다. 끝없는 OTT 시리즈에 자신을 맡기거나, 의미 없는 소셜미디어 피드를 밤새 새로고침 하기도 합니다. 일에 미친 듯이 몰두하거나, 사람들과의 피상적인 만남으로 소음을 만들어 마음의 공허를 감추려 합니다.
어떻게든 아픔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모습은, 2천 년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제자들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라는 생의 가장 큰 고통과 씨름하고 계시던 그 밤, 제자들은 기도하는 대신 잠을 택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의 피로가 아니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영혼이 선택한 가장 깊은 ‘도피’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고통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겟세마네를 기도의 전쟁터로 만드셨습니다.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분의 기도는 자신의 솔직한 연약함을 모두 쏟아내는 정직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도의 끝은 언제나“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위대한 순종으로 향했습니다. 겟세마네의 기도는 현실을 바꾸어 달라는 청원이 아니라, 현실을 감당할 힘을 얻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조율하는 거룩한 씨름이었습니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던 그 모습은, 기도가 얼마나 치열한 영적 전투인지를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당신의 겟세마네는 어디입니까? 피하고 싶은 문제, 외면하고 싶은 고통 앞에서 우리도 제자들처럼 영적인 잠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오늘 우리를 흔들어 깨우십니다.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기도는 현실로부터의 도피처가 아닙니다. 기도는 현실을 직면하고, 그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마침내 그 현실을 짊어지고 나아갈 하늘의 능력을 공급받는 가장 용감한 전장입니다.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하는 그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나의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결단이 바로 기도입니다.
이제 도피의 잠에서 깨어나, 우리 삶의 겟세마네로 나아갑시다. 비록 우리의 기도가 땀과 눈물로 얼룩질지라도, 그 치열한 씨름의 끝에서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도 부활의 아침을 여신 주님의 승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나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OCJ - 편집실에서 Pastor. Joseph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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