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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목회 칼럼

사랑이라는 이름의 담요

OCJ|2026. 1. 27. 06:18

 

우리는 참으로 비판에 익숙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SNS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정죄하는 거대한 광장이 되었고, 익명의 그늘에 숨어 던지는 날 선 말들은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작은 실수에는 현미경을 들이대면서도, 정작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합니다. 

 

서로의 상처를 파헤쳐 드러내는 ‘폭로의 문화’ 속에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차갑고 삭막한 곳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의 한복판에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세상의 방식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라고 권면합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사랑은 죄를 덮는다.’ 이 얼마나 놀랍고도 혁명적인 선언입니까? 여기서 죄를 덮는다는 것은, 잘못을 못 본 체하거나 불의와 타협하라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허물과 연약함을 발견했을 때, 정죄의 돌을 던지는 대신 용서와 긍휼의 담요를 덮어주는 행위입니다.


마치 추위에 떠는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주듯, 수치와 절망 속에 있는 형제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며 품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먼저 그 ‘덮어주시는 사랑’을 한없이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낱낱이 폭로하며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남김없이 덮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진 전적인 은혜요, 덮어주심의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그 크신 사랑을 받은 자녀이기에, 우리 또한 이제 다른 이를 덮어주는 삶을 살아야 할 거룩한 책임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배우자의 말실수와 자녀의 부족함을 비난 대신 격려로 덮어주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연약함을 가십거리로 삼는 대신 중보기도로 덮어주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실패하고 넘어진 이웃을 향해 손가락질 대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당신은 ‘폭로하는 자’의 자리에 서 있습니까, 아니면 ‘덮어주는 자’의 자리에 서 있습니까? 당신의 말과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는 날카로운 칼입니까, 아니면 상처를 감싸는 부드러운 담요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으로 서로의 죄를 덮어줄 때, 그 모습을 통해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비판과 정죄로 얼어붙은 이 시대에, 우리 교회가, 그리고 우리 각자가 ‘사랑의 담요’가 되어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 따스한 사랑의 실천이 바로 오늘, 당신 곁에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부터 시작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