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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총성 속의 '거짓 평화', 그리고 우리가 붙들 참된 샬롬
[OCJ 논설] 주요 이슈: 미국·이란 평화 협상 중 벌어지는 무력 충돌과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공습 등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 고조, 그로 인한 한국 경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2026년 5월 7일, 세계는 지독한 역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협상 타결이 논의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동시에 오만만에서는 미군 전투기가 이란 유조선을 향해 사격을 가하는 무력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레바논 휴전 합의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베이루트를 다시 공습했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외교가 부르짖는 '평화'가 얼마나 위태롭고 깨어지기 쉬운 유리성 같은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는 결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겹겹이 얽힌 글로벌 경제망 속에서,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 경고등을 켤 정도로 물가는 치솟고 성장은 둔화되는 짙은 먹구름이 서민들의 삶을 짓누르는 현실입니다.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라고 탄식했던 예레미야 선지자의 외침이 오늘날 2026년의 뉴스 헤드라인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교회는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신학적 시선으로 볼 때, 힘의 논리에 기반한 세상의 평화는 결코 인류에게 영속적인 안식을 줄 수 없습니다.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평화는 언제든 자국의 이익에 따라 총구로 돌변할 수 있음을 우리는 반복되는 역사를 통해 깨닫습니다. 목회자의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고단한 일상을 바라봅니다. 뉴스에서 쏟아지는 암울한 지표와 치솟는 물가 속에서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인간적 반응일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소망은 세상의 뉴스가 아닌 복음의 진리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앞둔 가장 혼란스러운 밤에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이 '샬롬'은 상황이 통제되어서 얻는 평안이 아니라, 만물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누리는 절대적 평안입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위기의 시대에 불안을 전염시키는 대신, 하늘의 위로와 평안을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흔들리는 경제 지표 앞에서도 이웃의 얼어붙은 손을 잡아주며, 총성이 멈추지 않는 분쟁 지역을 위해 무릎 꿇는 중보자가 됩시다. 십자가의 은혜로 빚어진 우리의 작은 사랑과 나눔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샬롬'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요한복음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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