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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요동치는 호르무즈 해협, 참된 평화의 닻을 내리며
[OCJ 논설] 주요 이슈: 2026년 5월 초,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이란과 미국, 주변국 간의 군사적 긴장 고조 및 한국 화물선 피격으로 인한 전 세계적 분쟁 위기

요동치는 호르무즈 해협의 파고가 전 세계의 정치·경제적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2026년 5월 현재, 이란이 아랍에미리트(UAE)를 겨냥해 대규모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감행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한국 화물선을 포함한 상선들을 위협하면서 중동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간신히 유지되던 휴전 협정은 파기될 위기에 처했고, 미국은 이란을 향해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경고하며 전면전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수만 명의 선원들이 해협에 고립되고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리는 이 사태는, 단순한 지정학적 위기를 넘어 오늘날 인류가 의존하고 있는 '거짓 평화'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는 자원 확보와 패권 다툼의 연속이었다. 이번 사태 역시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가 지나는 좁은 바닷길을 둘러싼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두려움의 발로다. 막강한 무기와 상호 파괴적인 위협으로 유지되는 힘의 균형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작은 불씨 하나에도 쉽게 무너져 내린다. 상대를 무력으로 굴복시키겠다는 호전적인 언사 이면에는, 이웃을 사랑하고 품어내지 못하는 타락한 세상의 깊은 영적 빈곤이 자리하고 있다. 성경이 경고한 '난리와 난리 소문'이 끊이지 않는 이 시대의 현실 앞에서, 우리는 인간의 지혜와 정치적 조약만으로는 결코 항구적인 샬롬(Shalom)에 이를 수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교회의 역할과 그리스도인의 응답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단순히 치솟는 유가와 경제적 파장을 염려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목회자의 따뜻한 가슴으로, 강대국들의 체스판 위에서 희생당하는 무고한 생명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공포에 떠는 중동의 민초들, 바다 한가운데 고립된 2만여 명의 선원들, 그리고 이 분쟁의 여파로 생계의 위협을 받을 전 세계의 약자들을 위해 눈물로 중보해야 할 때다. 미움과 보복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 것은 무력의 우위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원수 된 것을 육체로 허무신 그리스도의 사랑뿐이다.
거센 풍랑이 일던 갈릴리 바다를 말씀 한마디로 잠잠케 하신 주님의 권능이 오늘날 분쟁의 바다 위에도 임하기를 간구한다. 교회는 이 어두운 시대정신에 휩쓸리지 않고,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선포하는 예언자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호르무즈의 위기가 오히려 만국의 통치자이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회개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세상에 참된 소망의 닻을 내리는 것, 그것이 오늘날 이 땅의 교회가 감당해야 할 거룩한 부르심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요한복음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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