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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프로젝트 프리덤'의 유보와 진정한 십자가의 평화
[OCJ 논설] 주요 이슈: 2026년 5월 6일, 미국-이란 전쟁 격화 속 호르무즈 해협 군사 호위 작전인 '프로젝트 프리덤(Project Freedom)' 잠정 유보 및 휴전 협상 모색

2026년 5월, 세계는 여전히 전쟁의 포연과 짙은 불안 속에 휩싸여 있다. 중동의 화약고가 터지며 촉발된 이란과의 전쟁이 전 세계의 경제와 안보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최근 의미 있는 소식이 들려왔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상선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던 미국의 군사 작전, 이른바 '프로젝트 프리덤(Project Freedom)'이 잠정 유보된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 역시 해당 작전의 참여 검토를 불필요한 것으로 판단하고 중단했으며, 파키스탄 등을 중재자로 한 양국의 휴전 협상이 조심스럽게 모색되고 있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참혹한 사상자를 내며 치닫던 갈등 속에서, 비로소 숨을 고르고 대화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움직임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여기서 '프로젝트 프리덤(자유 프로젝트)'이라는 작전명에 담긴 역설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더 압도적인 힘과 무기를 통해 '자유'와 '평화'를 쟁취하려 해왔다. 군함을 앞세워 바닷길을 열고, 최첨단 무기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이른바 '팍스(Pax, 힘에 의한 평화)'의 방식이다.
그러나 칼로 얻은 평화는 필연적으로 칼을 부르며, 힘으로 억눌러 얻어낸 자유는 또 다른 누군가의 억압을 담보로 삼는다. 현재 중동 전역에서 들려오는 무고한 민간인들의 통곡과 파괴된 일상의 잔해들은, 무력으로는 참된 평화와 항구적 자유를 구축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증명하고 있다.
신학적 렌즈로 이 현상을 바라볼 때, 십자가의 복음은 세상이 추구하는 평화의 방식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평화는 타인을 정복함으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내어주는 희생과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 막힌 담을 허무는 것이었다.
군사적 억지력이나 자국의 이익을 향한 패권 다툼은 결코 인류의 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진정한 '자유'는 무장한 군함의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명을 귀히 여기고 패권주의적 탐욕을 내려놓는 십자가의 정신에서 발원한다.
목회자의 가슴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공포에 떨고 있는 분쟁 지역의 수많은 영혼들을 떠올리며 깊이 애통한다. 오늘날의 교회는 국익과 진영 논리에 편승하여 어느 한쪽의 무력을 응원하는 자리가 아니라, 상처 입은 자들을 위로하고 샬롬(Shalom)을 외치는 예언자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 세계 지도자들은 이번 작전 유보와 휴전 모색이 단순한 전술적 쉼표나 경제적 이해타산에 그치지 않도록, 참된 회개와 화해의 발걸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셨다. 얽히고설킨 국제 정세의 한복판에서도, 무력이 아닌 사랑만이 참된 '자유의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음을 믿는다. 권력자들의 협상 테이블 너머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손길을 구하며, 갈등의 바다 위에 그리스도의 온전한 평화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요한복음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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