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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가 '조선'인가… 호칭의 정치학 너머 '화해의 복음'을 묻다

OCJ|2026. 5. 2. 03:43

[OCJ 논설] 주요 이슈: 남북한 호칭 논쟁('북한' vs '조선')과 50% 아래로 떨어진 통일 의식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북한을 향한 호칭 논쟁이 뜨겁다. 2026년 5월 언론 보도에 따르면, 기존의 '북한'이라는 명칭 대신 상대의 공식 국호인 '조선'으로 부르며 실체를 인정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동시에 통일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국민이 역대 최저치인 49%로 떨어졌다는 조사 결과는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통일에 대한 당위성보다는 현실적인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북한 역시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는 70년 넘게 이어진 분단의 피로감과 깊어가는 단절이 낳은 서글픈 시대상이다.

정치적, 외교적 차원에서 '두 국가'의 실체를 인정하고 무력 충돌을 방지하며 평화적 공존을 모색하려는 접근은 현실적인 타당성을 지닐 수 있다. 그러나 목회적 가슴과 신학적 통찰로 이 사안을 바라볼 때,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과연 국경을 영구히 고착화하고 서로를 영원한 '타자'로 규정하며 외면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평화(Shalom)인가?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정치적 타협이나 사회학적 통계 너머를 보아야 한다. 인간의 이념과 정치가 쌓아 올린 장벽을 허무는 것은 오직 십자가의 복음뿐이다. 통일의 경제적 득실을 따지는 차가운 시대정신 속에서, 조국 교회는 '형제를 향한 긍휼'과 '민족 공동체의 치유'라는 사명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친히 우리의 평화가 되셔서, 적대감이라는 견고한 진을 자신의 육체로 허무셨다.

상대를 '북한'이라 부르든 '조선'이라 부르든, 저 철책 너머에는 여전히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영혼들이 존재한다. 국가 안보는 냉철한 현실주의를 택할지라도, 교회의 심장마저 식어버려서는 안 된다. 분단의 아픔을 망각해가는 이 시대에, 한국 교회는 화해의 중재자로 부름받았다. 무관심과 적대의 담벼락 틈새로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흘려보내는 일, 그것이 2026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맡겨진 가장 숭고한 십자가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 에베소서 2:14

OCJ 편집인 김 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