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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애가 3장 22-23절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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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OCJ시선

'사람 없는 사회'를 향해 질주하는 시대, 성육신의 온기가 그립다

OCJ|2026. 4. 29. 00:51

 

AI 기술 발전으로 인한 '사람 없는 소비' 현상 확산 (AI 결제 월 236만 건 돌파)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AI가 직접 결제하는 시스템 이용 건수가 한 달에 236만 건에 달하며 이른바 '사람 없는 소비'가 완벽한 일상의 현실이 되었다고 한다.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일상적인 접촉마저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로 대체되는 이 2026년의 풍경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빠르게 대면의 흔적을 지워가는 무인화(無人化) 시대로 진입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무결점의 효율성과 편리함이라는 현대사회의 거대한 우상 앞에서 인간과 인간이 얼굴을 마주해야만 했던 필수불가결한 자리들은 점차 증발하고 있다.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본질적으로 '관계적 존재(Relational Being)'로 지음 받았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품은 우리는, 타자와의 눈맞춤과 일상적 부대낌이라는 마찰 속에서 비로소 인격을 빚어가며 이웃 사랑의 본질을 체득한다. 그러나 AI가 주도하는 극단적 효율주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작은 수고로움이나 기다림을 '제거해야 할 오류'로 치부해 버린다. 삶의 접촉점이 단절된 '마찰 없는(frictionless) 사회'는 필연적으로 공감과 긍휼이 메말라가는 영적 사막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서늘한 시대적 흐름 한가운데서, 한국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맡겨진 사명은 실로 막중하다. 기독교 복음의 정수는 창조주가 굳이 번거로운 피조물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거하신 '성육신(Incarnation)'의 사건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의 사역을 결코 효율성으로 재단하지 않으셨다. 친히 나병 환자의 몸에 손을 뻗어 체온을 나누시고, 죄인이라 지탄받는 자들과 눈을 맞추며 밥상 공동체를 나누셨다. 사람 없는 소비의 시대, 교회가 세상을 향해 제시해야 할 대안적 가치는 더 매끄럽고 세련된 프로그램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의 체온이 묻어나는 다소 불편한 환대, 그리고 상처 입은 영혼을 향한 목회자의 다정한 동행이어야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지적 노동과 소통의 방식마저 전복시키는 지금, 우리는 "무엇이 진정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가"라는 근원적 질문 앞에 서 있다. 그 답은 차가운 기계 알고리즘이 결코 모방할 수 없는 '희생적 사랑'과 고통을 나누는 '연민'에 있다. 세상이 귀찮은 관계를 소거하며 '사람 없는 편의'를 향해 질주할 때, 교회는 묵묵히 '사람 냄새'가 진하게 배어나는 생명의 안식처로 남아주어야 한다. 이 고독한 시대가 가슴 깊이 목말라하는 것은 완벽한 AI의 서비스가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의 삶을 끌어안는 진실한 사람의 온기다.

 

 

OCJ 편집실에서 김 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