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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자- 우리들의 삶과 정체성의 이야기 3 - 방랑자인가? 순례자인가?

OCJ|2026. 4. 20. 04:08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노을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인생이란 걸어가는 그림자 지나가면 잊혀지는 가련한 배우일 인생이란 바보가 지껄이는 이야기시끄러운 소리와 광포로 가득하지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이야기)

-세익스피어 55 멕베스의 절규-

 

동양과 서양의 문학이 우리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하듯 어떤면에서 우리 인간은 한편의 연극을 펼치는 허망한 배우요우리인생은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을 나그네 길에 불과하다누가 얼마동안이나 우리를 알아 준다고 마치  천년이라도   처럼  많은 욕심을 내며  숯한 경쟁들 속에서  자식이고 가족이고 안달안달하면서  고단한 연출들을 하고 있는 것인가

 

가뜩이나 인생이 그럴진대 고향땅마저 떠나 호주까지  우리는 정말이지 이중 나그네가   아닌가 싶다간혹 오래 사신 이민 1세대들에게 호주에서 사시는 것이 좋냐 한국에서 사시는 것이 좋냐고 질문을 드리면 이제와서는 한국에서  잡고 살기도 어렵고호주에서도 계속 사는 것도 지루하고 갑갑하다는 푸념섞인 대답을 듣기도 한다.  정말이지 우리 이민자들의 정체성은 나그네  자체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놀라운 신앙의 비밀  하나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일부러 나그네로고의로 이민자로 만드셨다는 사실이다어떤 이들에게는 하나님과의 가장  축복의 약속과 언약 이면에 나그네의 삶이 있었으며 이민자의 정체성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대표적인 믿음의 조상하나님의 축복의 대명사가 누구인가역시 그의 족보에서 예수님이 오시게 되는  아브라함이다성경적 복의 대명사로 알려진 아브라함,  하나님은 그에게 복주시기 전에 먼저 나그네로이민자로 살게 하셨다그것도 정말 편안하게 살아야  뒤늦은 나이 떠나기 쉽지 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의 나그네로서의 여정의 시작은 그의 나이 75  부터 .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명령 아브라함은 순종했다부모 형제들이 있고 땅도 있고 집이 있는 하란평안히 안일하게   있는 본토 친척아비 집을  버리고 과감하게 났던 것이 늦은 나이에 그것도 갈바를 알지 못하고 도무지 어떤 곳인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한  무조건  버리고 정말 정처 없는 나그네의 길로 떠난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셔야  사랑하는 그에게   나그네의 이민자의 삶을 살게 하셨을까혹시 우리에게도 나의 의도와 욕망으로  호주 이민에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이 깊이 내재 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나님께서는  나를  고향 친척 아비집을 떠나  먼땅까지 오게 하셨을까우리들이 호주까지  정말 진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 보다  살기 좋고  매력있고  좋은 땅이라서?  21세기의 낙원이라서아이들 교육 때문에?  그것들은 전부 우리 자신들이 만들어  욕망이요 이유다

 

하나님의 이유성경적 이유는 자명 하다.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을 향한 참된 신앙의 ,  순례의 길을 떠나라는 뜻이 있는 것이다.  소문난 호주도 상황과 형편에 따라서 21세기의 낙원이 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참된 소망이 있을  없다는  세상의 것과  세상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진실로 영속적인 행복을   없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고 알게 하시기 위해서다우리의 진정한 본향을 찾아가게 하시기 위해서다고향땅에서 어찌보면 이미 주어진 라는

정체성 안에 갖혀서 선조들로 부터 주어지고 보여졌던  세상의 현실과 삶의 형편에 안주해 버릴지도 모르는  버리고 진정 하나님을 만나고 더불어  크고 참된 나를 다시 만나게 하시기 위하여  길을 떠나게 하시고이민자가 되게 하시고 나그네의 정체성을 갖게 하신 것이다. (베드로 전서 2:11)

 

이민자라도 다같은 이민자가 아니고 나그네라도  같은 나그네가 아니다성경적 영성의 눈으로 잘 바라보면 나그네에는  종류가 있음을    있다.  정말  그대로 바람따라 구름따라 아무 목적없는 유랑객목적 없이 살다가 인생을 끝내는 방랑자(exiles) 있고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는 인생천성을 향해 길을 떠난 나그네로 묘사되는 순례자(pilgrim) 그것이다.

 

같은 호주 이민자라도  종가 있는 것이다성경적 방랑자는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를 믿고 오직 자기 욕구에 따라 길을 떠난자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오직 생존을 위해서만 또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만 산다. 교회에 다닌다고 다 순례자가 아니다.

 

방랑자는 그의 목적지가 애매하며, 감정에 따라서 수시로 바뀌는 사람이다. 코앞의 현재에만 그의 온 관심을 기울이며 산다.  때에 따라서 기독교 신앙이라는 형식과 문화를 갖추기도 하지만 진리와 제자도를 따르기보다는 그 중심엔 늘 세상이 쫒아가는 신기루와 같은 물질, 명예, 권위 그리고 향락에 목말라 있고 언제나 한결같이 돈과 이 세상이 주는 복을 갖기 위한 신앙에 매진한다.  결국 신앙과 교회 공동체의 생활이라는 것도 늘 자신의 세상적 욕망과 방랑에의 연장일 뿐이고 외로움 탈피와 이민자로서 부족한 나의 사회적 욕구 충족, 때때로 집단 파워를 갖기 위한 위한 패거리 문화의 선을 넘지 못한다. 결국 나 자신이 방랑자인지 내가 누군지 조차 알지 못하며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했던 수 많은 종교인들처럼 자신을 신앙인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갈 뿐이다.  

          

또한 어떤 방랑자들은 신앙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고 그저 코 앞에 눈에 보이는 문제와 생존 그 자체의 한계에 갖혀 버린다.  인생에서, 한번 뿐인 그 나그네 길에서 진정으로 보아야 할 것들은 보지 못한다. 그저 한국에서와 같이 지난 과거의 삶과 똑같은 패턴으로 돈, 돈, 돈만 바라볼 뿐이다. 진정한 삶의 목적과 방향에 대한 아무런 가이드 라인이 그들에겐 없다. 사연끝에 떠나온 이민과 여행의 길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이끌려 또 많은 사연을 남기지만 마지막은 결국 어디로 향하게 되는지 도무지 그 방랑의 끝을 알 길이 없다.  

 

반면에 순례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그네로 만드신 것을 철저히 알고 자기가 가야할  본향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자라   있겠다 나의 욕망과 세상이 원하는 방랑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순례의 길을 선택한다왜냐하면 그는  세상이 모르지만 또한 이전 나의 과거에서는   없었지만 오직 순례자들만이 알고 누리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임마누엘의 참된 기쁨을 이미 체험했기 때문이다.  순례자는 그의 여정 가운데 진실로 하나님과 동행하기 원하며참된 본향을 찾아 길을 떠난진정한 나그네의 삶을   아는 이들이다.

 

그들은  육신의 욕구 충족을 위한 신앙 생활을 하지 않으며  세상이 추구하는 복에 세상이 규정한 성공기준에 안주하지 않는 이들이다.   세상사람들이 욕심으로 지는  많은 무거운 짐들을 지거나 가져가려 하지 않는다.(12:1)   신앙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이 주신 소명으로 부터    나를 발견한 자들이다.  지금 당장 고난을 의미하더라도 세상이 주는 잠시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의의 길을 가는 자들이다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역대상 29 : 15). 

 

순례자는 머무름이 없는 자들이다다시 말하면 자기가 몸담고 사는 땅을자신의  앞에 펼쳐지는 세계를  자신의 진정한 본향으로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다그들에게  세상은 단지 본향으로 가는 길에 잠시  머무르는 여관일 뿐이다편안하지 않고 어려움과 시련이 닥쳐도 본향을 향한  소망이 있기에 노상에  주저앉지 않고 기쁨으로 인내하며 간다.( 10:33-36,  21:16, 고후12:2)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에  올바른 안내 지도와 나침반 역할을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한다.(베드로 후서 1:19)  모든 나그네가 

가고자 하는  영원한 본향은 결국 방랑자가 아닌 순례자의 몫이다순례자만이 갖게 되는  세상에는 없는 참되고 신령한 가치요 복인 것이다.

 

순례자는 체험자다순례의 도상에서 지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항상 함께 하신다는  위대한 언약을 체험 하는 자들이다.  인간에게  보다   체험 복보다   복이 어디 있는가?  기독교는 이민생활을 달래줄 하나의 문화 악세사리같은 종교가 아니다하나님과의 만남이요진실한 체험의 사건이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바라는 것들의 실상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란 오직 체험한 자들의 몫이다.  그것이 신앙이요그것이 순례다그것이 참된 신앙 공동체의 모습이다.

 

방랑자들에게는  참된 체험이 없다 허망한 욕망만이 나를 지배할 뿐이다친척 본토 아비집을 떠났다는 말은  허망한 나를 이미 떠났다는 말이다한계에 갖혀있는 바로  허망한  버리려고 순례자가  것이다바로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려는 진정 나그네  것이다오스트레일리아 라는 말은 라틴어 어원으로서 남쪽의 미지의 대륙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하나님께서 보내신 남쪽의 미지의 대륙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대륙이며 가장  섬나라인 호주나의 순례의 도상  가운데고난의 자리에  있는 지금  순간  자신을 내려 놓고 시편 필자의 고백을 가슴에 새겨 본다.

 

하늘에서는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밖에 내가 사모  이가 없나이다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마음의 반석이시오영원한 분깃이시라( 73:25).

 

큰빛 장로교회 이지훈 목사 (rheelight@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