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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배용찬 장로 창조에세이 / 모세열전 - 광야 80년
야곱가족 70여명이 애굽에 정착한 지 430여년이 지났다. 이스라엘백성이 강성해 지는 것을 본 애굽왕은 이들을 두려워하여 인구를 억제하는 정책을 폈다. 이 때 레위집안에 한 아기가 태어났다. 3개월을 키웠으나 더 이상 키울 수 없어 역청칠을 한 갈대상자에 넣어 강에 띄웠는데 마침 바로의 공주가 이를 발견하여 자신의 아들로 키워진 사람이 모세다.

당시 최고의 권부였던 바로왕궁은 세계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다. 역사학과 수리학 그리고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문을 두루 섭렵한 모세는 훤훤장부가 되었다. 그가 40세가 되던 해 같은 민족이 학대받는 모습을 본 모세는 애굽의 감독을 죽였는데<출2: 12> 이 사실이 탄로가 나서 바로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었다.
도망자가 된 모세는 라암셋에서 시나이 반도를 가로질러 사막지역 약 400Km를 수 주일간 걸어서 아카바만 동쪽 아라비아북서부 미디안지역까지 도망쳤다. 그곳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에서 난 미디안의 후손들이 살고 있던 척박한 지역이었다. 실의에 빠진 모새가 우물가에서 지역유지였던 이드로의 딸들을 만나 그 중 십보라(Zipporah)와 결혼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40년간, 모세는 이곳에서 장인 이드로의 도움을 받으며 양을 치는 목자로 생을 이어가면서 영성을 키워가는 훈련을 받게 되었다. 애굽의 왕자에서 양을 치는 목자가 된 모세는 스스로 애굽의 교만을 내려놓는 깊은 겸손을 배웠고 후일 백성을 지도할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어 갔다.
모래와 바위투성이의 광야에서 그가 스스로 터득한 일은 전능자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었다. 신약성경에서 여러 번 언급했듯이 모세 5경(Tora)을 구상하고 집필한 사실이 놀랍다. 그는 당대의 지식을 두루 갖춘 지식인이었고 문자의 활용능력도 있었으며<행7: 22> 특별히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성까지 갖추었으니 자신이 보지 못했던 세상의 첫 창조 장면까지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모세는 80살이 되었다. 어느 날 불이 붙은 떨기나무 옆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시는 음성을 들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 5>’라는 말을 들을 때 모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렸다.
여기서 모세는 하나님의 실체를 질문하는 명장면이 나온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백성을 구출하라는 명을 하실 때 모세는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말하리까’라는 질문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 이니라(I am who I am)<출3: 14>’라는 하나님이 자신을 명쾌하게 설명하시는 유명한 답을 듣게 된다.

이후 모세는 이스라엘백성 2백만 명을 이끌고 광야길 40년을 헤매면서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복지를 바로 눈앞에 두고 느보산에서 눈을 감았다. 가데스 므리바물을 내면서 자신의 감정에 치우져 바위를 친 일<민20: 12>로 인해 축복의 땅 입성이 불허되었던 것이다. 그의 나이 120살 때였다.
그는 일생 120년 중 성장한 40년을 제외한 80(영성준비 40년, 지도자 40년)년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3단게의 일생을 살았다. 성경은 ‘그가 죽을 때에도 눈이 어둡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쇄하지 아니하였더라<신34: 7>’라고 하여 자연적 쇠약이 아닌 사명완수에 따른 죽음이었음을 분명히 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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