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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김종환 박사 시니어 칼럼 ① 가족의 두 얼굴
‘사랑과 미움, 감사와 원망’이 함께 있는 곳이 가정이다. 가족은 가장 깊이 사랑하는 관계이지만, 또한 서로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이것이 가족의 두 얼굴이다.
1997년 안식년으로 연합교회신학교(UTC)에 왔을 때, 한 잡지의 요청으로 가정칼럼을 연재하게 되었고, 독자들 중에 상담을 요청하는 가정들이 자주 있었다. 상담실이 없으니 신학교 교실에서 혹은 공원 벤치에서 내담자들을 만났다. 당시 동포사회에 카운슬링이 절실함을 알고, 급하게 전화상담교육을 하고, ‘호주생명의 전화(초대 이사장 홍관표 목사님)’가 탄생되었다. 이런 경험들로 시드니 한인가정의 두 얼굴을 자주 보게 된 셈이다.

오늘은 시니어 부모 세대와 중년 자녀 세대에 나타나는 가족의 두 얼굴을 생각해보려고 한다. 시니어 부모들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견디면서 고국에서는 상상도 못한 고생들을 하며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시켰다. 이민생활은 가족을 살리기 위한 희생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께 매달렸다. 교회에서 모국어로 예배드리며, 성도들과 한국 음식을 나누며 외로움을 견딜 수 있었다.
새벽기도와 구역예배, 통성기도와 성경공부는 단순한 예배가 아니었다. 이민자의 불안과 눈물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생존의 통로였다. 그러나 이제 40·50대가 된 자녀 세대가 기억하는 가족의 모습은 조금 다를 수 있다. 부모님은 늘 바쁘고 지쳐 있었고 너무 엄격했다.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학교교육을 해주려고 애썼지만, 자녀는 성적과 성공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했던 압박이 심했다.
부모는 교회를 신앙공동체로 경험했지만, 자녀는 주일마다 빠져서는 안 되는 의무의 장소로 경험했을 수도 있다. 부모에게 교회는 이민 생활의 피난처였으나, 영어 문화권에서 성장한 자녀에게 한인교회는 때로 부모 세대의 언어와 문화, 권위가 지배하는 답답한 공간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부모와 자녀의 기억이 충돌한다. 부모들은 “우리가 너희를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이며, 자녀들은 “그러나 우리는 너무 외롭고 힘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부모는 자녀의 신앙이 약해진 것을 안타까워하며 “왜 교회에 잘 나가지 않느냐”고 따지지만, 자녀는 “교회에 다니면서 우리 가정이 정말 행복했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부모에게는 희생의 기억이 남아 있고, 자녀에게는 상처의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이다. 신앙 전수의 어려움도 바로 이 지점이다. 부모는 신앙을 예배 참석, 성경 공부 등으로 이해한다. 물론 소중한 신앙의 유산이지만, 자녀 세대는 부모의 말보다 ‘관계’를 통하여 신앙의 진실성을 경험한다.
교회에서는 사랑과 용서를 말하면서, 가정에서는 비난과 명령이 반복되고, 오래된 갈등을 외면한다면 자녀들은 복음보다 신앙과 삶의 불일치와 위선을 보게 된다. 우리가 가정에서 신앙을 어떻게 보여 주었는지를 정직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신앙이란 가르침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의 사랑과 용서의 ‘관계’ 속에서 전승되기 때문이다.
자녀는 부모의 기도보다 사과하는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부모의 성경 지식보다 자녀들을 품어 주는 사랑에서 복음을 배운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야 할 신앙 유산은 훈계가 아니라 증언이어야 한다. “너는 반드시 교회에 나가야 한다.”는 명령보다 “나는 이민 생활의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이런 위로를 받았다”는 고백이 더 깊이 다가간다.
자녀의 신앙을 검사하기보다 자녀가 살아온 이야기를 먼저 귀 기울여야 한다. 교회를 떠난 이유나 신앙생활에서 받은 상처를 말할 때 곧바로 반박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경청하며 “그때 많이 외로웠겠구나. 내가 미처 알지 못했다.”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진지한 사과도 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 김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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