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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환 박사 시니어 칼럼 ② 금혼식, 박수가 멈춘 후에

OCJ 2026. 9. 14. 15:53

 

결혼 50주년 금혼식 날이었다. 월남참전용사였던 남편과 아내를 축하하기 위해 자손들과 친지들이 모였다. 사람들은 반세기 동안 가정을 지켜 온 노부부에게 박수를 보냈고, 두 사람은 다정하게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하객들이 돌아간 뒤, 아내가 자손들 앞에서 뜻밖에 ‘졸혼’을 선언했다.

 “오늘로 아내 노릇을 졸업하고 싶구나. 남은 생애는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

남편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지만 자녀들은 어머니를 이해했다. 지휘관처럼 명령만하고 애정은 좀처럼 표현하지 않았던 아버지에게 상처받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가족을 위하여 희생적으로 책임을 다했다는 것도 알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의 가부장적 언어폭력 속에서 외롭게 살아왔는지도 알고 있었다. 물론 당시 군사문화와 가부장적 문화는 남편의 권위적인 태도를 형성한 배경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배경이 아내와 자녀가 받은 상처까지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남편에게는 가족을 책임지고 지켜 낸 50년이었지만, 아내에게는 자신의 상처를 감추고 견디어 온 50년이었을 것이다.

이 글은 졸혼이 정답이라는 뜻이 아니라, 배우자의 고통을 너무 오래 듣지 않으면 금혼식의 축하가 졸혼 선언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경고는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 함께 살았다는 것과 서로를 잘 사랑했다는 것은 다르다. 70·80대 남성 가운데 일부는 전쟁과 군대, 권위주의와 산업화 시대를 통과하면서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억제하고, 대화하기보다 명령하는 방식에 익숙해진 세대이다. 그것은 가족을 지키는 힘이었지만 때로는 가족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폭력이기도 했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도 월남참전용사인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는 딸을 염려하지만 딸의 말을 듣는 대신 명령하고 강요한다. 딸에게 고기를 먹이려는 것도 단순한 식사 문제가 아니다. “네 몸은 네 것이 아니라 가족의 질서에 속한다.”는 선언과 같은 셈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딸을 걱정한다고 하지만, 그 걱정은 설득이나 대화가 아니라 강요와 폭력으로 나타난다. 

영화 《호프 스프링즈》는 오래된 된 부부 이야기이다. 한집에 살지만 각방을 쓰며, 필요한 말만 주고받는 사이이다. 아내는 부부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해변 마을에 가서 한 주간의 집중 카운슬링을 신청하는데, 남편은 “지금까지 별문제 없이 살았는데 무엇을 고쳐야 하느냐”며 상담을 거부한다.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상담을 하며,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상처와 외로움을 말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부부가 아니라 하우스메이트처럼 ‘각방-이혼’ 상태인 것을 깨닫고, 새로운 다짐들을 하게 된다. 영화 마지막에 두 사람은 바닷가에서 자손들을 초대하여 ‘혼인서약 갱신예식’을 한다. 젊은 날의 결혼식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약점과 실패를 모두 알고도 다시 상대방을 사랑하려는 예식이다.

금혼식 날 졸혼을 선언한 부부와 해변에서 결혼서약을 갱신한 부부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가장 큰 차이는 늦게라도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경청의 기회’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금혼식 부부는 50년 동안 말하지 못했던 고통이 마지막에 졸혼으로 터져 나왔고, 《호프 스프링즈》 부부는 마음의 아픈 이야기를 서로 경청하며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다.

 


기독교 전통으로 확산된 FR(Family Restoration)과 ME(Marriage Encounter) 등 다양한 부부와 가정회복 프로그램이 시니어들의 행복한 금혼식과 회혼식을 위하여 필요하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말씀하신다(엡 5:21). 부부의 하나 됨은 한 사람이 지휘관이고, 다른 한 사람은 부하가 되는 관계가 아니다. 서로 경청하며, 잘못을 인정하며, 상대방의 존엄을 지켜 주는 관계이다. 또한 성경은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권면하신다(약 1:19). 오랜 부부일수록 배우자를 잘 안다고 생각하여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을 때가 많다. 노년기 부부회복의 첫걸음은 더 많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의 말에 경청하는 것이다.

100세 시대에 80대 부부의 금혼식은 종착점이 아니라, 앞으로 남은 20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다짐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지나온 50년을 축하하는 것만큼 앞으로 더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는 중요한 예식이다. 

OCJ에서 ‘금혼식 준비 교실’을 만들어 경청 훈련을 하고, 멋진 <합동 금혼식>을 하면 좋겠다.  
물론 <합동 회혼식>도 그리하기를 기대한다.

금혼을 맞은 부부가 서로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보면 어떨까.

“당신은 나와 살면서 언제 가장 외로웠습니까?”

“남은 날 동안 내가 무엇을 다르게 해 주기를 원합니까?”

그 대답을 변명하지 않고 끝까지 들은 뒤, 서로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신과 함께한 모든 날이 행복했던 것은 아닙니다. 내가 당신을 외롭게 했던 날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내 곁을 지켜 주어서 고맙습니다. 이제 남은 길은 이전과 다르게 걷겠습니다. 처음보다 화려하지 않지만 처음보다 깊은 사랑으로, 오늘 다시 당신을 선택합니다.”

-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 김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