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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가죽 재킷을 입은 거리의 선지자: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간 존 스미스 목사
거친 할리데이비슨 엔진 소리, 검은 가죽 재킷과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몸에 새겨진 문신. 이것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목회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지만 호주 기독교 역사상 가장 독창적이고 예언자적인 목회자로 불리는 존 스미스 목사(Rev. Dr. John Smith, 1942년 출생, 2019년 소천)에게 이 복장은 곧 세상과 소통하는 거룩한 제사장의 예복이었습니다.

호주 멜버른에서 보수적이고 정통적인 목회자로 사역을 시작했던 그는 1970년대 초반, 세상의 가장 어두운 변두리로 시선을 돌리며 완전히 새로운 사역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기독교 모터사이클 클럽인 갓 스쿼드(God's Squad) 멜버른 지부를 1972년에 설립하고 수십 년간 회장으로 헌신하며, 사회에서 버림받은 아웃로(Outlaw) 폭주족들과 빈민, 소외된 자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존 스미스 목사는 단지 거리를 누비는 라이더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저명한 학자이자 사회 인류학자, 작가였으며,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연설을 하고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같은 세계적 지도자들과 함께 강단에 섰던 탁월한 지성이었습니다. 오세아니아 크리스천 저널은 오늘, 세속화된 문화 속에서 기독교의 본질을 가장 치열하게 살아낸 존 스미스 목사의 생애를 깊이 조명하고자 합니다.
Life and Acts of Faith (삶과 신앙적 행적)
존 스미스 목사의 신앙적 행적은 철저한 성육신적(Incarnational) 삶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1960년대 말, 그는 우연히 도로가에 험악한 표정으로 주차되어 있는 폭주족 무리를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두려워하고 혐오했지만, 스미스 목사의 마음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긍휼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는 하나님, 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누군가를 세워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자신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직접 그 일을 하라는 내면의 부르심을 주셨습니다. 너무나도 모범적이었던 그는 그날 이후 기꺼이 세상의 비난을 감수하며 변방으로 향했습니다.
1972년, 그는 마약과 쾌락주의로 가득 찬 선베리 록 페스티벌(Sunbury Rock Festival)에 아내와 함께 찾아갔습니다. 그곳은 기독교 목회자가 갈 만한 곳이 아니라는 교계의 거센 비판이 있었지만, 그는 그곳에서 삶이 망가진 청년들과 대화하며 예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폭력과 범죄에 찌들어 있던 한 폭주족이 회심하였고, 스미스 목사는 수많은 군중이 조롱 섞인 시선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진흙탕 강물에 직접 들어가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 장면은 훗날 호주 교회사에 남을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의 신앙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전통적인 교회들은 그가 잘못된 장소에 간다며 그를 사역지에서 내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존 웨슬리의 발자취를 따라, 아스팔트 위를 자신의 교구로 삼았습니다. 그는 1퍼센트의 아웃로 클럽 멤버들과 형제처럼 지내며, 복음이 단순히 중산층의 도덕적 교양이 아니라 죄인과 병든 자를 살리는 생명의 능력임을 온몸으로 증명했습니다. 말년에 오랜 암 투병으로 육체가 무너져 내리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소외된 자들을 향한 설교와 헌신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Practical Influence (실제적인 영향력)
존 스미스 목사의 헌신은 호주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실제적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가 이끈 갓 스쿼드는 호주 전역은 물론 뉴질랜드, 유럽, 미국으로 확장되어, 사회에서 배척받은 이들에게 영적 가족과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했습니다. 이 클럽을 통해 마약 중독자, 전과자, 폭력배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또한 그는 소외된 청소년들과 빈민을 돕기 위해 컨선 오스트레일리아(Concern Australia)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구조적인 가난과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는 안락함에 빠져 있는 현대 교회를 향해 끊임없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며, 그리스도인들이 예술, 음악, 사회 정의 등 다양한 하위문화(Subculture) 영역으로 들어가 복음의 빛을 비춰야 한다고 도전했습니다. 오늘날 오세아니아의 수많은 젊은 사역자들과 기독교 시민운동가들은 그의 치열했던 삶과 신학적 통찰에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Spiritual Lessons for Today's Believers (오늘날 성도들에게 주는 영적 교훈)
첫째, 성육신적 사랑의 실천입니다. 존 스미스 목사는 복음이 안전한 교회 건물 안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창녀들의 친구가 되셨듯, 오늘날의 성도들 역시 자신의 안전지대를 떠나 세상이 외면하고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그들의 언어로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둘째, 종교적 편견의 타파입니다. 우리는 종종 겉모습이나 사회적 지위로 사람을 판단하고, 기독교를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 축소시키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존 스미스는 가죽 재킷과 문신 너머에 있는 영혼의 깊은 갈망을 보았습니다. 진정한 복음은 문화적 장벽을 뛰어넘어 가장 절망적인 곳에서 가장 강력하게 역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예언자적 용기입니다. 그는 세속의 타락한 문화와도 싸웠지만, 동시에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는 교회의 위선과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향해 정죄의 손가락을 가리키기 전에, 상처 입은 자들을 품어 안는 넓은 가슴과 사회적 불의에 맞서는 거룩한 분노를 동시에 회복해야 합니다.
Conclusion
존 스미스 목사는 참으로 모순투성이의 사람이었습니다. 거친 오토바이를 타는 터프가이였지만 시와 문학을 사랑했고, 불의 앞에서는 사자처럼 포효했지만 버림받은 영혼 앞에서는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낭만주의자였습니다. 2019년, 그는 영원한 본향으로 떠났지만 그가 남긴 묵직한 배기음은 여전히 우리 영혼을 깊이 깨우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둡다고 탄식하기 전에, 우리 각자가 기꺼이 진흙탕 속으로 걸어 들어가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지, 그의 삶은 오세아니아와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무겁고도 영광스러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2장 17절 (Mark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태그: 크리스천, 신앙인물, 존스미스목사, 갓스쿼드, 오세아니아기독교, 노방전도, O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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