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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내 속의 근심이 잦아들고 위로가 머무는 자리
[오늘의 말씀] 시편 94:17-19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빠졌으리로다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시편 94편은 억울한 자를 압제하는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간구하는 탄원시입니다. 본문을 기록한 시인은 불의한 현실 속에서 깊은 상실감과 고립을 경험합니다. 악인들은 득세하고 의인들은 핍박받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시인은 마치 자신의 영혼이 칠흑 같은 침묵의 세계로 떨어지는 듯한 위기를 느낍니다. 발이 미끄러지는 절망적인 벼랑 끝에서 그를 붙든 것은 인간적인 해답이나 상황의 호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변함없는 하나님의 헤세드, 즉 언약에 기초한 인자하심이었습니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무력한 개인은 권력자의 압제 앞에서 스스로를 방어할 힘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 무력함의 심연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역설적인 위로를 발견합니다. 세상의 폭력이 만들어낸 내면의 거대한 근심 속을 뚫고 들어오는 하나님의 세밀한 위안이 어떻게 영혼을 소생시키는지 생생하게 증언하는 것입니다.
평생을 목회 현장에서 수많은 성도들의 눈물을 마주하며 깨달은 한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진정한 위로는 결코 환경의 개선에서 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종종 고난의 터널을 지날 때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도하지만, 정작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고난 한가운데서 경험하는 주님의 품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근심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마치 나뭇가지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머릿속이 수만 가지 걱정으로 얽히고설켜 도무지 길을 찾을 수 없는 캄캄한 밤과 같습니다. 발이 미끄러져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한 그 찰나의 순간, 우리의 지성과 이성을 뛰어넘어 영혼 깊은 곳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의 위로가 찾아옵니다.
오세아니아의 넓고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에도 때로는 이처럼 얽힌 가지 같은 근심과 고독이 찾아올 것입니다. 세상은 당신의 힘으로 이겨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미끄러짐을 정직하게 주님께 고백하라고 초청합니다. 내 영혼이 침묵 속에 빠질 것 같은 극심한 무력감을 인정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강권하여 붙드십니다.
오늘 당신의 마음을 짓누르는 근심의 타래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복잡하게 얽힌 상처와 불안을 주의 못 박힌 손이 부드럽게 풀어주실 것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위로가 당신의 지친 영혼을 다시 춤추게 하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오늘의 찬송: 찬송 406장 -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풍랑 일어도 안전한 포구
폭풍까지도 다스리시는 주
의 영원한 팔 의지해
주의 영원하신 팔 함께 하사
항상 나를 붙드시니
어느 곳에 가든지 요동하지 않음은
주의 팔을 의지함이라
[오늘의 기도]
사랑과 위로의 주님,
내 안의 수많은 생각과 얽힌 근심들이 나를 짓누르고 영혼을 깊은 침묵으로 몰아갈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거센 파도 앞에서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탄식할 때,
다함이 없는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국의 낯선 땅에서 때로 밀려오는 외로움과 삶의 무거운 짐조차도 주님 앞에서는 다 무너져 내림을 믿습니다.
내면의 불안을 잠재우시는 주님의 따뜻한 위안이 오늘 나의 영혼을 다시금 즐거워하게 하옵소서.
환경이 주지 못하는 영원한 평안으로 나를 덮어 주셔서,
오늘 하루도 온전히 주의 영원하신 팔만 의지하며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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