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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세상을 금빛 은혜로 깁다, '문화 돌봄'의 선구자: 마코토 후지무라 (Makoto Fujimura)

OCJ|2026. 6. 12. 04:52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속 문화와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며, 문화를 '싸워 이겨야 할 전쟁터'로 인식하곤 합니다. 그러나 여기, 파괴되고 깨어진 세상의 문화를 십자가의 은혜로 꿰매고 생명을 불어넣는 '정원사'로 부름받은 한 예술가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현대미술가이자 신학적 사상가인 마코토 후지무라(Makoto Fujimura, 1960~)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1960년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 마코토 후지무라는 버크넬 대학교를 졸업한 뒤, 도쿄 예술대학에서 일본의 고전 예술 양식인 '니혼가(Nihonga)' 기법을 연구하며 예술 석사(M.F.A.)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1992년, 불과 31세의 나이에 도쿄 현대미술관이 작품을 구입한 최연소 작가로 기록되며 현대 미술계의 총아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화려한 예술적 성취에만 있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그는, 세속 예술계와 기독교 신앙이라는 이질적인 두 세계 사이의 다리가 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는 풀러 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예배, 신학, 예술을 위한 브렘 센터(Brehm Center)의 디렉터로 헌신했으며,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미국국립예술위원회(National Council on the Arts)의 임명직 위원으로 활동하며 국가 예술 정책에 선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전 세계의 미술관과 갤러리에 그의 작품이 걸려 있지만, 그는 자신을 화가이기 이전에 '창조주를 닮아가는 예배자'로 정의합니다.

마코토 후지무라가 신앙과 예술을 통합하는 삶을 살게 된 배경에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가난한 신혼 시절의 일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젊고 무명이었던 화가 시절, 그는 당장 내일 먹을 끼니와 월세를 걱정해야 할 만큼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 주디(Judy)가 얼마 남지 않은 생활비로 식료품 대신 아름다운 꽃다발을 사 들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팍팍한 현실에 지쳐 있던 그는 아내에게 "먹을 것도 없는 마당에 어떻게 꽃을 살 생각을 할 수 있느냐"며 화를 냈습니다. 그때 아내는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먹이는 것도 필요해." (We need to feed our souls, too.)

이 짧은 한마디는 훗날 그의 예술관과 신앙을 형성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단순히 떡으로만 사는 육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아 진선미(眞善美)를 갈망하는 영적 존재임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의 신앙적 행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은 바로 '킨츠기(Kintsugi)'라는 철학입니다. 킨츠기는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접착제로 이어 붙이고, 그 틈새를 금(Gold)으로 메우는 일본의 전통 수리 기법입니다. 후지무라는 이 킨츠기가 복음의 핵심을 완벽하게 시각화한다고 고백합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세상과 우리의 영혼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단지 고장 나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fix') 오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보혈이라는 '금'으로 우리의 상처와 깨어짐을 이어 붙이시며, 오히려 상처가 영광의 흔적이 되는 '새로운 피조물(New Creation)'로 빚어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의 상흔을 지우지 않고 영광스러운 상처로 간직하셨던 것처럼, 후지무라는 자신의 예술을 통해 깨어진 세상 속에 임하는 '킨츠기의 은혜(Kintsugi Grace)'를 선포해 왔습니다.

마코토 후지무라가 현대 교회와 사회에 미친 가장 위대한 실천적 영향력은 바로 '문화 돌봄(Culture Care)' 운동의 창시입니다. 

수십 년간 많은 기독교인들은 문화를 세속주의에 맞서 빼앗고 탈환해야 할 '문화 전쟁(Culture War)'의 관점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후지무라는 저서 『컬처 케어(Culture Care)』를 통해 "문화는 쟁취하거나 빼앗아야 할 영토가 아니라, 우리가 사랑으로 돌보아 관리하도록 부름받은 생태계이자 정원"이라고 역설했습니다. 

그는 예술가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고대 영어인 **'메악스타파(Mearcstapa, 경계를 걷는 사람들)'**가 될 것을 촉구합니다. 교회와 세속 사회의 경계,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에 서서 양쪽을 화해시키고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영향력은 신학계와 예술계를 넘어 실천적 사역으로 이어졌습니다. 1990년 '국제예술운동(International Arts Movement)'을 설립하여 전 세계의 크리스천 아티스트들이 신앙적 정체성을 지키며 탁월한 예술을 창조할 수 있도록 돕는 생태계를 구축했습니다. 풀러 신학교에서는 미래의 목회자들이 신학과 예술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도록 교육하며, 교회 강단이 다시금 하나님의 창조적 아름다움을 선포하는 자리가 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마코토 후지무라의 삶과 철학은 성과주의와 실용주의에 지친 현대 성도들에게 깊은 영적 울림을 줍니다.

첫째, 아름다움은 사치가 아니라 영혼의 양식입니다.
현대 사회는 효율성과 경제적 가치로 모든 것을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실 때 단지 '기능적'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도록'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성도들은 매일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창조해 내는 작은 예술가로 살아가야 합니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메마른 이웃의 영혼을 위로하고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일깨우는 강력한 복음의 도구가 됩니다.

둘째, 상처와 깨어짐은 은혜가 임하는 통로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연약함과 실패, 그리고 세상의 부조리(깨어짐) 앞에서 좌절합니다. 그러나 '킨츠기'의 복음은 우리의 금 간 인생의 틈새야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는 자리임을 가르쳐 줍니다. 상처를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통해 그리스도의 빛이 어떻게 굴절되어 타인에게 흘러가는지를 기대해야 합니다.

셋째, '전사'가 아닌 '정원사'로 세상을 돌보아야 합니다.
세상은 교회의 비판과 정죄를 통해 변화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자가 속한 직장, 가정, 지역 사회라는 정원에 그리스도의 선함과 아름다움의 씨앗을 심고, 사랑으로 물을 주며 가꾸는 '문화 돌봄'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맑은 물을 찾아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성도들이 스스로 맑은 샘물이 될 때 타락한 문화 생태계는 정화될 수 있습니다.

"예술가는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며 영혼이 깃든 작품을 남길 수 있는가?"라는 세속의 질문 앞에서, 마코토 후지무라는 "예술은 하나님이 맡기신 세상을 창조적으로 돌보는 가장 거룩한 소명"이라고 답했습니다. 그의 붓끝에서 그려진 금빛 선들은 단순히 캔버스를 채우는 안료가 아니라, 절망과 폭력으로 산산조각 난 세상을 향해 건네는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입니다. 

우리 모두가 전문적인 미술가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각자는 '나의 삶'이라는 캔버스 앞에 선 창조적 예술가들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가정과 직장에서 깨어진 관계를 복음의 금빛 은혜로 꿰매어 내는 '문화 돌봄의 정원사'로 살아가는 오세아니아의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사야 61장 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