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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가장 찬란한 '가운데 토막'을 하나님께 바치다: '히말라야의 슈바이처' 강원희 (Dr. Kang Won-hee) 선교사

OCJ|2026. 6. 4. 05:44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장 젊고 능력 있는 시기를 성공과 안정을 구축하는 데 사용합니다. 그리고 은퇴 후 남은 시간, 이른바 인생의 '마지막 꼬리'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가장 높은 곳, 히말라야의 척박한 오지를 향해 자신의 가장 빛나는 인생의 전성기를 통째로 내어놓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히말라야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고(故) 강원희 (Dr. Kang Won-hee) 선교사입니다.

 


1934년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난 강원희 선교사는 6·25 전쟁의 참상을 겪으며 남하한 피난민이었습니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질병과 가난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한 그는 "평생 아픈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을 품고 1961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세브란스)을 졸업했습니다. 이후 강원도 속초에 병원을 개업한 그는 뛰어난 의술로 이른바 '잘나가는 병원장'이 되었습니다. 부와 명예가 보장된 탄탄대로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안락한 생활 속에서도 그의 가슴 한편에는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거룩한 빚진 자의 의식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1982년, 마흔아홉이라는 늦은 나이에 안정된 병원을 정리하고 네팔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릅니다. 이후 약 40년 동안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그리고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가장 척박한 의료 사각지대를 누비며 가난한 자들의 진정한 이웃이자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었습니다. 2023년 5월, 89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까지 그의 삶은 전 세계 크리스천들에게 '참된 복음적 삶'이 무엇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강원희 선교사의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신앙적 선언이 있습니다. 선교지로 떠나기 전, 고생길을 우려하며 "우리도 그냥 평범하게 살면 안 되느냐"고 묻는 아내 최화순 권사(간호사)에게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여보, 나는 꼬리도 머리도 아닌, 인생의 가장 맛있는 '가운데 토막'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소."

그의 이 고백은 단순히 낭만적인 수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술이 그저 자선활동으로 끝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오지 빈민촌의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낮에는 수십 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밤에는 잠을 쪼개가며 현지 언어를 공부했습니다. 또한 "봉사하려는 마음만으로는 병을 고칠 수 없다. 선한 의도만큼이나 탁월한 실력이 있어야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철학으로 안식년으로 한국에 올 때마다 대형병원에 들어가 최신 의료 기술을 새롭게 배웠습니다. 가난한 환자일수록 더 큰 정성으로 대해야 복음의 진정성이 전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신앙적 행적 중 현지인들에게 가장 깊은 각인을 남긴 일화가 있습니다. 네팔의 열악한 진료소에서 수술 중 과다 출혈로 생명이 위독해진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피를 구할 길이 막막하자, 강 선교사는 주저 없이 자신의 팔에 바늘을 꽂았습니다. 자신의 피를 직접 뽑아 현지인 환자에게 수혈하며 생명을 살려낸 것입니다. 이 성육신적(Incarnational) 사랑의 실천은 현지인들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고, 그가 '히말라야의 슈바이처'로 불리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강원희 선교사의 헌신은 한국과 오세아니아를 넘어 글로벌 선교계에 거대한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1. 글로벌 의료선교의 개척과 확장:
   네팔의 거지촌 무료 진료부터 방글라데시 난민 수용소 병원, 스리랑카,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명성의료센터(MCM)에 이르기까지 40년간 수십만 명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83세의 고령으로 에티오피아에서 은퇴하기까지, 그는 단기 구호가 아닌 현지인들의 삶에 깊숙이 뿌리내리는 '지속 가능한 생명 사역'의 롤모델이 되었습니다.
   
2. 세상과 교회를 향한 강력한 울림:
   그의 헌신적인 삶은 2011년 기독교 다큐멘터리 영화 <소명 3: 히말라야의 슈바이처>로 제작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기주의와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돈과 명예를 배설물처럼 여기고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한 그의 행보는 수많은 평신도와 청년들에게 선교적 도전을 주었습니다.

3. 존경받는 신앙의 유산:
   국민훈장 동백장, 아산상 의료봉사상, 서재필 의학상 등 한국의 굵직한 상들을 휩쓸었음에도, 그는 언제나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지게 된 엄청난 빚을 조금 갚았을 뿐"이라며 겸손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 자체가 기독교 신앙의 가장 강력한 변증이 되었습니다.

강원희 선교사의 치열하고 아름다운 삶은 오늘날 오세아니아와 전 세계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에게 다음과 같은 영적 교훈을 던집니다.

첫째, 인생의 '가운데 토막'을 드리는 헌신입니다.
  우리는 종종 나의 여유가 생길 때, 성공을 다 이룬 뒤에 남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타협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찌꺼기가 아니라 가장 귀한 중심입니다. 나의 가장 젊은 날, 가장 능력 있는 시기, 가장 귀한 자원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둘째, 사랑은 '탁월한 실력'을 동반해야 합니다.
  그는 기도와 열정에만 기대지 않았습니다. 밤을 새워 현지어를 배우고, 끊임없이 의학 기술을 연마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이웃 사랑은 감상적인 동정심을 넘어, 세상을 실질적으로 섬길 수 있는 전문성과 치열한 성실함으로 완성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셋째, 나의 피를 나누는 '성육신적 십자가 사랑'입니다.
  현지인 환자에게 자신의 피를 직접 수혈한 강 선교사의 모습은, 죄인인 우리를 살리기 위해 친히 자신의 보혈을 흘려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그 자체였습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살리기 위해서는 나의 편안함을 깨뜨리고 생명을 내어주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왜 이렇게 사느냐고요? 내가 받은 사랑을 갚기 위해 그분의 사랑이 필요한 이들 곁에 있는 것입니다."

평생을 헐벗은 자들의 친구이자 영혼의 의사로 살았던 강원희 선교사는 2023년 5월, 이 땅에서의 89년 여정을 마치고 하늘의 본향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히말라야의 만년설 위에, 벵골만의 난민촌에, 에티오피아의 메마른 땅 위에 흘린 사랑의 피는 여전히 살아서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안락한 삶이라는 우상을 부수고, 하나님을 향해 인생의 가장 달콤한 '가운데 토막'을 기꺼이 바쳤던 그의 발자취는 오늘날 우리에게 준엄하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인생 중 어떤 토막을 주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일서 3장 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