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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울려 퍼진 긍휼의 호통, 소년범들의 영원한 아버지: 천종호 (Chun Jong-ho) 판사

OCJ|2026. 6. 2. 04:55

"안 돼, 안 바꿔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대한민국에서 법정 안팎의 소식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비행 청소년들을 향해 단호하고도 매몰차게 내뱉는 이 엄격한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죄를 뉘우치지 않는 소년범과 책임을 회피하는 부모를 향해 불호령을 내리는 모습으로 인해 그에게는 '호통 판사', '사이다 판사'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그 단호한 판결석 이면에는 법정 밖에서 아이들을 끌어안고 함께 눈물짓는 '소년범의 대부'가 존재합니다. 바로 대한민국 법조계이자 공직 사회에서 가장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현대의 크리스천, 천종호(Chun Jong-ho) 판사입니다. 

 


오세아니아 크리스천 저널(OCJ)은 정치, 법률, 공직 분야에서 신앙의 궤적을 묵묵히 그려가고 있는 인물들을 조명하며, 세간에 널리 알려진 대형 사역자들 이면에서 묵묵히 '숨은 보석'처럼 빛나는 이들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천종호 판사는 법이라는 엄정한 잣대를 다루는 직업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공동선'을 삶으로 실천하며 한국 사회의 사법 시스템과 교계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멘토입니다.

1965년 부산의 가난한 달동네에서 태어난 그는 9식구가 단칸방에 모여 살아야 했던 극심한 빈곤 속에서 자랐습니다. 할머니는 무속인이었고 부모님은 한때 일본계 신흥 종교를 좇았던, 기독교와는 전혀 무관한 가정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 배를 곯지 않고 친구들과 놀기 위해 나갔던 교회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교회 생활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면 부모님이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할까 봐 밤을 새워가며 공부했다"는 그는 친구의 도움과 치열한 노력 끝에 법대에 진학했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천종호 판사의 삶을 관통하는 신앙적 뼈대는 바로 로마서 12장 1~2절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나갔던 성경 암송 대회에서 로마서 12장을 다 외우지 못해 예선 탈락했던 쓰라린 기억은, 오히려 이 구절을 평생의 신앙 좌우명으로 가슴에 새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는 말씀은 세속적인 성공과 권력을 좇기 쉬운 법조계에서 그가 중심을 잃지 않게 한 닻이었습니다.

2010년, 천 판사는 창원지방법원 소년부로 발령을 받게 됩니다. 많은 판사들이 기피하는 소년 재판이었지만, 그는 이를 하나님이 주신 '소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소년 재판은 한 건당 3분 만에 선고가 끝나는 이른바 '컵라면 재판'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을 겪었던 그는, 법정에 선 아이들의 비행 뒤에 숨겨진 가정 해체와 사회적 방치를 단번에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는 기계적으로 판결봉을 두드리는 대신 아이들을 향해 애정 어린 호통을 쳤고, 때로는 법정에서 "어머니, 사랑합니다!"를 외치게 하며 굳게 닫힌 아이들의 마음을 무너뜨렸습니다.

그의 신앙적 행적은 단지 법정 안에서 머물지 않았습니다. 소년원을 퇴소한 아이들이 돌아갈 가정이 없어 다시 범죄의 늪으로 빠지는 것을 목격한 그는, 사비를 털어 아이들의 보금자리인 '청소년회복센터(사법형 그룹홈)'를 설립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또한 위기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 사단법인 '만사소년(萬事少年, 모든 일은 소년으로 통한다)'을 세우고, 아이들로 구성된 '만사소년 FC' 축구단을 만들어 매주 함께 땀을 흘리며 아버지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천종호 판사의 헌신은 한국의 소년 사법 시스템과 사회복지에 실질적이고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1. 사법 시스템의 패러다임 전환: 그가 제안하고 정착시킨 '청소년회복센터' 제도는 국가가 외면했던 위기 청소년들의 회복을 돕는 법적, 제도적 장치로 발전했습니다. 단순한 '처벌' 중심의 사법에서, 가해자의 교화와 피해자의 회복을 동시에 도모하는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의 모델을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게 한 것입니다.


2. 기독교 공공신학과 공동선의 전파: 천 판사는 평신도(현 부산 금정평안교회 시무장로)임에도 불구하고 깊이 있는 신학적 통찰을 사회에 나누고 있습니다. 그는 『천종호 판사의 선, 정의, 법』, 『천종호 판사의 하나님 나라와 공동선』 등을 출간하며, 한국 교회가 개교회주의에 갇히지 말고 세상을 향해 '공동선(The Common Good)'을 추구해야 한다고 부르짖었습니다. 


3. 법률가의 시선으로 본 성경 해설: 최근(2025년 3월)에는 사도 바울의 로마서를 법학자의 관점에서 쉽게 풀어낸 『천종호 판사는 바울에게 무엇을 물을까』를 출간했습니다. 율법의 한계와 은혜의 복음을 법률적 논증으로 풀어낸 이 책은, 신학자나 목회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대 기독교 지성인들에게 신앙과 직업 윤리의 완벽한 일치를 보여준 놀라운 성과입니다.

오세아니아와 전 세계의 크리스천들이 천종호 판사의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영적 교훈은 매우 명확하고 강력합니다.

첫째, 진정한 공의(Justice)는 사랑(Love)과 함께 완성됩니다.
    세상의 법은 죄를 벌하는 데 그치지만, 하나님의 법은 죄인을 회복시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천 판사의 매서운 '호통'은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이들이 죄의 무게를 깨닫고 돌이키게 하려는 '사랑의 매'였습니다. 우리 역시 직장과 사회에서 엄격한 원칙을 지키되, 그 이면에 사람을 살리는 긍휼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둘째, 직업의 현장이 곧 사역의 현장입니다.
    천 판사는 판사라는 직업을 단순히 생계 수단이나 권력으로 여기지 않고, 상처받은 영혼들을 치유하는 목회의 현장으로 삼았습니다. 소년범들을 위해 직접 후원자를 찾아다니고 축구팀을 이끄는 그의 모습은, 성도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법, 정치, 교육, 비즈니스 등)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하는지를 정확히 보여줍니다.


셋째,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거룩한 몸부림이 필요합니다.
    편안하게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길을 두고, 8년간 1만 2천여 명의 비행 청소년과 부대끼며 눈물을 흘린 그의 삶은 세속적 가치관을 거스르는 길이었습니다. 로마서 12장의 말씀처럼, 세상의 냉소주의와 개인주의에 동화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산 제물'의 삶이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됩니다.

천종호 판사는 재판석이라는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한 소년범들의 눈물을 닦아준 현대판 느헤미야이자 다니엘입니다. "소년의 비행은 소년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입니다"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곧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탄식이기도 합니다. 정의가 메말라가는 시대, 법이라는 차가운 도구에 예수 그리스도의 뜨거운 심장을 불어넣은 그의 궤적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이 선 그 자리에서, 당신은 누구의 이웃이 되어 주고 있습니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장 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