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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에서 피워낸 십자가의 문학: '종지기 동화작가' 권정생 (Kwon Jung-saeng)

OCJ|2026. 6. 1. 03:42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가 몰아치는 경상북도 안동의 한 시골 마을의 겨울 새벽. 한 병약한 남자가 얼어붙은 맨손으로 교회 종탑의 굵은 줄을 당기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왜 장갑을 끼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새벽종 소리는 가난하고 소외받고 아픈 이가 듣고 벌레며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도 듣는데, 어떻게 따뜻한 손으로 칠 수 있어."

이 남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아동문학가이자, 평생을 경북 안동 일직교회의 문간방에서 '종지기'로 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권정생(Kwon Jung-saeng, 1937~2007) 선생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그는 『강아지똥』, 『몽실언니』와 같은 밀리언셀러를 집필한 위대한 문학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문학과 삶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동력은 바로 깊고 처절한 '그리스도교 신앙'이었습니다. 화려한 무대나 거대한 강단이 아닌, 가장 작고 초라한 교회의 종탑 아래에서 펜을 들었던 그는, 오늘날 성공과 성장에 목말라 있는 현대 교회와 문화·예술계의 크리스천들에게 묵직한 영적 울림을 던지는 시대의 '숨은 보석(Hidden Gem)'입니다.

권정생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케노시스(Kenosis, 자기 비움)'를 그대로 빼닮아 있었습니다.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왔으나, 평생을 극심한 가난과 병마와 싸워야 했습니다. 청년 시절 늑막염과 폐결핵을 앓으며 신장과 방광까지 망가져, 평생 소변 주머니를 몸에 차고 다녀야 하는 참혹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견딜 수 없는 육체의 고통과 가난 속에서 그가 붙잡은 것은 오직 십자가뿐이었습니다. 그는 밤마다 텅 빈 예배당 마룻바닥에 엎드려 눈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1967년, 의지할 곳 하나 없던 그는 안동 일직교회 문간방에 기거하며 종지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비가 오면 창호지 문구멍으로 개구리가 뛰어들어오고 겨울이면 쥐들이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비좁은 흙담집이었지만, 그는 그곳을 가장 거룩한 성소로 여겼습니다.

그의 신앙은 철저한 '실천'이었습니다. 1969년 기독교아동문학상에 단편동화 『강아지똥』이 당선되며 작가로서 명성을 얻고, 이후 수많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매년 수억 원의 인세가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단벌옷을 입고, 최소한의 식사만 하며 흙집에서 살았습니다. "내 몫 이상을 쓰는 것은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라는 그의 굳은 신념은, 산상수훈의 삶을 문자 그대로 살아내고자 했던 뼈아픈 순종이었습니다.

문학과 예술(Arts and Media)의 영역에서 권정생이 남긴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그는 단순히 판타지나 교훈을 주는 동화를 넘어, 전쟁, 가난, 장애와 같은 혹독한 현실의 아픔을 '기독교적 박애주의'와 '십자가의 사랑'으로 극복해내는 인물들을 그려냈습니다. 

그의 대표작 『강아지똥』은 기독교 복음의 완벽한 알레고리(은유)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고 더럽다고 멸시받는 강아지똥이, 결국 자신을 완전히 녹여내어 아름다운 민들레꽃을 피우는 밑거름이 된다는 이야기는 "가장 작은 자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은혜이자 대속의 십자가 사랑 그 자체입니다.

그의 영향력은 문학적 성취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2007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평생 가난한 줄로만 알았던 그의 이름 앞으로 무려 10억 원이 넘는 자산과 매년 1억 원 이상의 인세가 쌓여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세상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는 유언장을 통해 다음과 같이 남겼습니다.

"인세는 어린이들로 인해 생긴 것이니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굶주린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쓰고, 여력이 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서도 써 달라."

자신을 위해서는 단 1원도 쓰지 않고 모든 것을 굶주린 생명을 살리는 데 내어준 그의 삶은, 현재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을 통해 전 세계 소외된 아이들을 돕는 실질적인 구호와 문화 지원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낮은 자의 영성 (The Spirituality of the Lowest): 권정생의 삶과 작품은 성공과 번영을 좇는 현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시선은 가장 낮고 소외된 곳을 향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보잘것없는 '강아지똥'조차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생명을 잉태하는 거룩한 도구가 됩니다. 


철저한 청지기적 물질관 (Radical Stewardship): 자본주의적 가치관이 교회 안까지 스며든 오늘날,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고도 흙집에서 쥐들과 동거하며 전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환원한 그의 삶은 '진짜 부요함'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강력한 영적 도전입니다.


고통을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예술 (Transforming Suffering into Art and Love): 그는 평생을 괴롭힌 육신의 질병과 가난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을 통해 타인의 아픔을 깊이 공감하는 영적 통로를 열었고, 자신의 문학(예술)을 상처 입은 세상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권정생은 화려한 마이크나 거대한 강단이 아닌, 병든 몸과 낡은 펜 하나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명해낸 사람입니다. 그가 매일 맨손으로 당겼던 새벽종 소리는 춥고 배고픈 세상을 향한 간절한 중보기도였으며, 그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쓰신 한 편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동화였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예술과 미디어, 그리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우리는 과연 '따뜻한 손'의 안일함을 버리고 세상을 향해 십자가의 종을 울릴 준비가 되어 있는지, 종지기 권정생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준엄하고도 따스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린도전서 1:2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