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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청소년 사역과 소외된 자들의 영적 아버지: 존 유렌 (John U'Ren)

OCJ|2026. 5. 26. 05:40

[OCJ 인물 탐구] 

오늘날 호주의 청소년 및 캠퍼스 사역이라 하면 대규모 집회나 화려한 찬양팀, 체계적인 제자훈련 시스템을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현대 호주 기독교 청소년 사역의 든든한 뼈대는, 가장 어둡고 소외된 곳을 향해 묵묵히 걸어 들어갔던 믿음의 선구자들이 흘린 눈물과 헌신 위에 세워졌습니다. 

2023년 4월 16일, 90세의 일기로 주님의 품에 안긴 존 유렌(John U'Ren, 1933~2023)은 대형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 목회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1970년대 이후 호주 기독교 청소년 사역, 선교 교육, 그리고 빈민 구호 사역의 지형을 완전히 뒤바꾼 '숨겨진 보석'이자, 수많은 사역자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영적 족장(vital tribal advisor)'이었습니다. 

 


1950년대 평범한 가구 외판원으로 일하던 그는, 소년원(Turana Boys' Home)에서 자원봉사 가석방 심사관으로 섬기며 세상에서 버림받은 청소년들을 향한 하나님의 애통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 작은 헌신은 훗날 호주 교회와 다음 세대를 깨우는 거대한 사역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존 유렌의 삶은 철저히 성경적이었으며,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급진적 제자도(Radical Discipleship)'를 치열하게 살아낸 여정이었습니다.

거리로 나간 복음, 테오스(Theos) 사역: 1980년부터 1989년까지 호주 스크립쳐 유니온 빅토리아주(SU Victoria)의 대표로 헌신한 그는, 이에 앞선 1967년 '테오스(Theos)'라는 혁신적인 청소년 아웃리치 프로그램을 창설했습니다. 그는 교회가 청소년들이 제 발로 찾아오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2층 버스를 개조해 이동식 커피숍을 만든 그는 세인트 킬다(St Kilda)와 브로드메도우스(Broadmeadows) 같은 우범 지대와 빈민가, 심지어 악명 높은 폭주족 갱단(Hells Angels)의 콘서트장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다가가 생명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온유한 번입의 집(The House of the Gentle Bunyip)': 1975년, 존 유렌은 침례교 신학자 아톨 길(Athol Gill) 박사와 함께 멜버른 클리프턴 힐에 '온유한 번입의 집'이라는 의도적 기독교 공동체를 설립했습니다. 이 공동체는 제도권 교회의 한계를 넘어, 노숙자, 조현병 환자, 소외된 청소년들과 한 지붕 아래서 숙식을 함께하며 복음의 사회적, 실천적 의미를 증명해 냈습니다. 그에게 신앙은 머리에만 머무는 교리가 아니라, 내 삶의 개인적인 공간과 식탁을 헐벗은 이웃에게 기꺼이 내어주는 치열한 일상이었습니다.

존 유렌의 헌신은 단순한 거리의 봉사를 넘어, 호주 교계의 교육과 청소년 사역 구조에 실질적이고 항구적인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청소년 사역을 신학적, 전문적 사역으로 격상: 1990년, 그는 팀 코니(Tim Corney) 박사와 함께 휘틀리 신학교(Whitley College)에 최초로 청소년 사역 과정(Youth work course)을 개설했습니다. 이는 청소년 사역이 단순한 '교회학교 자원봉사'를 넘어, 문화적 분석과 신학적 깊이를 갖춘 전문 사역으로 호주 학계와 교계 내에서 정식으로 인정받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계 선교 학교(SWM) 설립과 한인 사회와의 특별한 인연: 1989년부터 1999년까지 휘틀리 신학교 '세계 선교 학교(School of World Mission)'의 초대 디렉터로 헌신한 그는, 교실 안의 신학을 현장의 빈민가 실습(Mission plunges)과 접목시켰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세계 선교 과정의 첫 번째 등록 학생은 한국인 유학생이었으며, 그녀는 훗날 빅토리아주 침례교단(BUV)의 다문화 사역을 이끄는 양미원 목사(Rev. Meewon Yang)로 훌륭하게 성장했습니다. 존 유렌의 탁월한 네트워킹과 따뜻한 멘토링은 전 세계 수십 개국에서 온 사역자들을 길러내는 영적 인큐베이터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1. "사람이 프로그램보다, 물질보다 중요하다" (People Matter More Than Things): 이는 존 유렌이 스크립쳐 유니온 사역 내내 굳게 붙들었던 핵심 철학입니다. 현대 교회가 종종 효율적인 시스템, 화려한 행사, 건물의 크기에 마음을 빼앗길 때, 단 한 명의 고통받는 영혼을 살리기 위해 위험한 거리로 주저 없이 나섰던 그의 삶은 우리에게 '사역의 진짜 본질'을 날카롭게 일깨워 줍니다.


2. 경계선을 넘는 선교적 상상력과 용기: 그는 안락한 예배당에 머물지 않고 2층 버스를 타고 세상의 중심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늘날의 캠퍼스 사역과 다음 세대 사역 역시, 우리만의 안전지대를 벗어나 세속 문화의 한복판으로 창의적이고 대담하게 침투하는 십자가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3. 삶으로 빚어내는 참된 공동체성: 현대 사회의 극단적인 개인주의 속에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개방하여 상처받은 이들과 '진짜 가족'이 되어준 그의 공동체적 삶은 진정한 '교회됨'이 무엇인지 강렬하게 도전합니다. 

존 유렌은 세상의 기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인물은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척박했던 호주의 청소년 사역 토대를 닦고, 수많은 젊은 사역자들의 든든한 등대가 되어준 그의 생애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위대함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선명히 보여줍니다. 90세의 일기로 떠나는 그날까지 부서진 세상을 향해 가장 낮은 자세로 다가갔던 그의 삶의 궤적은, 오늘날 오세아니아와 전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묵직한 영적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