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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복을 입은 선지자, '빼앗긴 세대'의 눈물을 닦다: 로널드 윌슨 경 (Sir Ronald Wilson)

OCJ|2026. 5. 20. 02:58

[OCJ 인물 탐구] 

세상의 법과 제도를 다루는 공직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공의를 완벽하게 일치시킨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 소개할 인물은 호주 최고 법원의 대법관이자 인권위원장으로 봉사하며, 호주 현대사에서 가장 어둡고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데 앞장섰던 로널드 달링 윌슨 경(Sir Ronald Darling Wilson, 1922-2005)입니다. 

 


1922년 서호주 제럴턴(Geraldton)에서 태어난 그는 화려한 배경이나 특권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습니다. 가정 형편으로 인해 14세의 어린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고 지역 법원의 심부름꾼(messenger)으로 일해야 했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호주 왕립 공군(RAAF)에 자원입대하여 참전하는 등 격동의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종전 후 서호주 대학교(UWA)에서 법학을 공부한 윌슨은 탁월한 법적 통찰력을 인정받아 서호주 법무차관(Solicitor-General)을 거쳐, 1979년 서호주 출신으로는 최초로 호주 연방 대법관(High Court Justice)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호주 사회에서 그의 삶을 진정으로 위대하게 평가하는 이유는 그가 도달한 권력의 '지위' 때문이 아니라, 그 지위를 통해 흘려보낸 숭고한 '신앙의 행적' 때문이었습니다.

로널드 윌슨 경에게 신앙은 주일에만 머무는 개인적인 종교 의식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고 법을 해석하며 사람을 대하는 '삶의 렌즈' 그 자체였습니다. 깊고 확고한 신앙심을 소유했던 그는 대법관이라는 무거운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호주 연합교회(Uniting Church in Australia)를 통해 자신의 영적 부르심에 평생토록 충실했습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가 대법관직에서 물러날 즈음인 1988년에 호주 연합교회의 총회장(President of the Assembly)으로 선출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연합교회 역사상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layperson)가 호주 전역을 아우르는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총회장 취임 후, 교회 안팎을 순회하며 사회 정의와 인권, 그리고 소외된 자들을 향한 교회의 뼈아픈 반성과 책임을 끊임없이 역설했습니다. 

지인들은 그를 향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결코 내세우지 않았고 대중의 관심을 구하지 않았으나, 인권, 평등, 공정성의 가치에 대한 그의 헌신은 우리에게 큰 영감을 줍니다."

권력의 중심부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법과 공직이라는 냉혹한 영역 속에서 묵묵히 실천해 낸 참된 신앙인이었습니다.

로널드 윌슨 경의 실천적 영향력이 호주 사회 전체의 도덕적 근간을 뒤흔든 것은 1990년부터 1997년까지 호주 인권평등기회위원회(HREOC) 위원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는 믹 도슨(Mick Dodson)과 함께 과거 호주 정부가 자행한 '원주민 아동 강제 분리 정책'의 실태를 파악하는 국가 조사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호주 전역을 직접 발로 뛰며 원주민들의 참혹한 증언을 청취했습니다. 그리고 1997년, 이 조사의 결과물로 호주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기념비적인 보고서 **『그들을 집으로 (Bringing Them Home)』**가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윌슨 경은 이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겪은 수백 건의 개인적 파멸과 고통, 상실의 이야기들을 마주하며 이를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경험"이라고 회고했습니다. 

그의 기독교적 양심은 교회가 과거 원주민 아동 강제 수용에 일부 관여했던 역사적 과오를 침묵 속에 덮어두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호주 연합교회를 비롯한 기독교계가 먼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원주민들에게 사과하도록 강력히 이끌었으며, 이는 훗날 호주 전역의 '국가 사과의 날(National Sorry Day)' 제정과 2008년 호주 연방 정부의 역사적인 공식 사과를 이끌어내는 결정적인 영적, 도덕적 기초가 되었습니다. 

로널드 윌슨 경의 삶은 오늘날의 크리스천, 특히 법조계와 공직, 정치의 영역에서 분투하는 현대 성도들에게 깊은 도전을 줍니다.

1. 공적 영역으로 번역된 신앙 (Faith Translated into Public Justice):  
   신앙은 교회 건물 안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자신의 지위(대법관, 인권위원장)와 전문성(법)을 개인의 영달이 아닌,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고 사회의 구조적 악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철저히 사용했습니다.


2.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회개의 용기 (The Courage to Repent):
   자신이 속한 국가와 교회의 치부(원주민 말살 정책)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의 진리가 뼈아픈 회개에서 출발함을 알았기에, 타협 없이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진정한 용서를 구했습니다.


3. 높은 곳에서의 겸손 (Humility in High Places):
   사회의 최고 권위 자리에 올랐음에도 그는 언제나 작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울어주는 따뜻한 심장을 가졌습니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시선은 더 낮은 곳을 향해야 한다는 참된 기독교적 리더십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로널드 윌슨 경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입지전적인 성공을 거둔 최고의 법조인이었지만,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무너진 세상을 수축하고 상처 입은 영혼들을 싸매는 '법복을 입은 선지자'였습니다. 호주의 척박한 역사 속에 회개와 화해의 씨앗을 깊이 심고 2005년 주님의 품으로 돌아간 그의 삶은, 오세아니아를 넘어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우리 역시 각자가 부르심을 받은 일터와 공적인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공의와 사랑을 담대히 실천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장 8절, 개역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