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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J 인물 탐구] 해변의 안락함을 버리고 전쟁터의 어머니가 되다: 아이린 글리슨 선교사 (Irene Gleeson)

OCJ|2026. 5. 18. 04:10

현대 기독교인들은 종종 '축복'을 삶의 안락함과 노후의 평안으로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안정을 누려야 할 중년의 나이에, 호주 시드니의 아름다운 해변가(Northern Beaches)에 위치한 집을 팔고 지구상에서 가장 끔찍한 분쟁 지역으로 떠난 한 호주 할머니가 있습니다. 오세아니아의 숨겨진 영적 거인이자 '호주의 마더 테레사'로 불리는 아이린 글리슨(Irene Gleeson AO, 1944–2013) 선교사가 그 주인공입니다. 

 


아이린 글리슨의 삶의 시작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1944년 시드니에서 태어난 그녀는 미군이었던 아버지가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떠나버리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고, 극심한 빈곤 속에서 자라난 아이린은 계부로부터 끔찍한 학대와 성폭력을 당하는 등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15세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학대를 피해 집을 도망쳐 나와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선택했습니다. 

21세가 되었을 때 이미 세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던 그녀의 삶은 30대 후반에 이르러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결혼 생활은 무너졌고, 자녀들은 통제 불능 상태였으며, 그녀 자신은 깊은 우울증의 늪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 그녀는 우연히 발걸음을 향한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녀의 산산조각 난 삶을 모아, 세상에서 가장 버림받은 영혼들을 품기 위한 '은혜의 그릇'으로 빚어가기 시작하셨습니다.

1991년, 47세의 아이린 글리슨은 아프리카의 고통받는 아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강권적인 부르심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안정적인 호주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전 재산을 처분한 뒤 4명의 자녀와 13명의 손주들에게 눈물로 작별을 고했습니다. 그녀가 작은 캐러밴(캠핑 트레일러)을 끌고 도착한 곳은 수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간다 북부의 '키트굼(Kitgum)'이었습니다. 

당시 그곳은 조셉 코니(Joseph Kony)가 이끄는 잔혹한 무장 단체인 '신의 저항군(LRA)'이 아이들을 납치해 소년병으로 세뇌시키고 학살을 자행하던 생지옥이었습니다. 모두가 도망치는 그 전쟁터 한복판에 아이린은 자신의 캐러밴을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영어를 전혀 못 하는 현지인들이 이 낯선 백인 여성을 경계했지만, 그녀는 커다란 망고나무 아래 앉아 전쟁의 트라우마로 영혼이 파괴된 고아들과 소년병 출신 아이들을 모아 노래를 불러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흙바닥에 글씨를 쓰며 영어를 가르쳤고, 아이들과 똑같이 대야에 물을 받아 목욕을 했으며, 현지 음식인 포쇼(Posho)와 콩을 먹었습니다. 자신을 위한 번듯한 집을 짓는 대신, 끝까지 캐러밴에 머물며 아이들의 진정한 어머니가 되기를 선택했습니다."

아이린 선교사의 신앙은 책상 위의 신학이 아니라 생명을 거는 '사투'였습니다. 밤낮으로 이어지는 반군의 습격 위협, 죽음을 넘나드는 말라리아 감염, 극도의 고립감과 우울증이 그녀를 괴롭혔지만, 그녀는 결코 우간다의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 티셔츠를 아이들에게 입히고, 복음과 함께 빵과 글을 가르치며 척박한 땅에 십자가의 기적을 심어 나갔습니다. 

망고나무 아래서 시작된 그녀의 헌신은 '아이린 글리슨 재단(Irene Gleeson Foundation, IGF)'이라는 거대한 생명의 사역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22년의 사역 기간 동안 그녀는 반군과 에이즈로 인해 부모를 잃은 8,000명 이상의 고아들에게 매일 음식과 의료, 교육을 제공했습니다. 

그녀의 실천적인 사역은 우간다 북부 지역 사회 전체를 변화시켰습니다. 
* 4~5개의 대형 초등학교 및 기독교 학교 설립
* 1,500명 이상의 청년들을 위한 직업 훈련소(Tertiary Training College) 운영
* 60개 병상을 갖춘 에이즈 호스피스 병동 및 영유아 고아원 설립
* 100만 명 이상의 청취자를 보유한 기독교 라디오 방송국 'Mighty Fire FM' 개국
* 지역 사회를 위한 식수용 우물 개발 및 영양실조 치료 프로그램 운영

이러한 놀라운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호주 연방정부는 그녀에게 **호주 훈장(Officer of the Order of Australia, AO)**을 수여했습니다. 2013년 7월 21일, 아이린 선교사가 68세를 일기로 식도암으로 호주 시드니에서 소천했을 때, 우간다 키트굼에서는 무려 14,000명의 현지인들이 모여 '마마 아이린(Mama Irene)'의 죽음을 애도하며 눈물의 추모식을 거행했습니다. 오늘날에도 IGF를 통해 그녀가 남긴 신앙의 유산은 수많은 현지 사역자들에 의해 활발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린 글리슨 선교사의 삶은 세속주의와 안락함에 젖어 있는 오늘날의 오세아니아 기독교인들에게 강력하고 실제적인 도전을 던집니다.

1. 상처를 사명으로 승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  
   어린 시절 극심한 학대와 버림받음을 겪었던 아이린은 자신의 상처를 변명 삼아 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깊은 고통의 경험은 세상에서 가장 잔혹하게 버림받은 우간다 소년병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영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어두운 상처마저도 타인을 치유하는 사명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 안락함을 버릴 수 있는 '십자가의 용기'  
   우리는 자주 신앙을 내 삶의 질을 높이는 수단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아이린 선교사는 시드니 노던 비치의 그림 같은 집과 은퇴 후의 안락함을 기꺼이 십자가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참된 복음은 우리가 움켜쥔 안락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소명의 자리로 나아갈 때 그 능력이 발휘됩니다.

3. 삶을 나누는 성육신적 사랑의 실천
   그녀는 멀리서 후원금만을 보내는 구제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지독한 가난과 말라리아, 총성이 빗발치는 현장 속으로 직접 들어가 그들과 똑같이 먹고 마시며 삶을 나누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진정한 선교와 이웃 사랑은 대상과 동화되는 '성육신적 헌신'에서 비롯됨을 보여줍니다.

호주의 안락한 해변을 등지고 아프리카의 메마른 흙먼지 속으로 걸어 들어갔던 아이린 글리슨 선교사. 그녀의 캐러밴은 화려한 교회 건물이 아니었지만, 그곳은 수천 명의 아이들에게 생수와 복음이 흘러나오는 가장 거룩한 성전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지금 어느 곳을 향하고 있습니까? 내 삶의 평안만을 유지하기 위해 울타리를 높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마 아이린"이 우간다 땅에 남긴 눈물의 씨앗은 오늘날 우리에게 '행동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묵직하게 묻고 있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삶으로 증명될 때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장 40절)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마태복음 25장 21절 – 아이린 글리슨 선교사의 장례식에서 낭독된 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