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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세상의 '전략적 안정'과 십자가의 '참된 샬롬'
[OCJ 논설] 주요 이슈: 2026년 5월 15일 미중 정상회담의 '전략적 안정' 합의와 그 이면에 남겨진 한국의 지정학적·경제적 불안
2026년 5월 15일,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의 정상이 만나 이른바 '전략적 안정'을 논했다. 관세 완화와 글로벌 공급망, 그리고 대만 해협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복잡한 갈등 속에서 두 나라는 전면적 충돌을 피하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겉보기에는 전 세계 경제와 안보에 숨통이 트이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접하는 한국 사회의 표정에는 안도보다 깊은 불안이 서려 있다. 국가 전략산업인 반도체와 배터리에 필수적인 희토류를 특정 국가에 90% 이상 의존하는 현실 속에서, 강대국들의 자국 우선주의적 타협은 언제든 우리의 목을 조르는 새로운 '비용'과 '위험'으로 전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국제사회가 추구하는 이 기민한 타협과 안정은 고대 로마 제국이 자랑했던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현대적 변형에 불과하다. 무력과 자본, 그리고 철저한 이익의 교환으로 유지되는 세상의 평화는 언제나 변두리에 위치한 약자의 위태로움을 묵인함으로써 성립된다. 언론이 던진 "누구의 안정인가? 어떤 비용으로 유지되는 안정인가?"라는 뼈아픈 질문처럼, 이기적 욕망과 힘의 논리에 기초한 세상의 조약문은 결코 우리에게 영속적인 평화의 보증수표가 될 수 없다.
이토록 불확실하고 냉혹한 지정학적 격랑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소망의 닻을 내려야 할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요 14:27).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이루신 '샬롬(Shalom)'은 힘있는 자들의 이권 나누기가 아니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철저한 자기 비움과 희생의 평화였다. 우리는 경제 지표와 군사력만이 국가의 생존을 보장한다는 세상의 적자생존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역사의 참된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회복해야 한다.
위기의 시대일수록 한국 교회는 예언자적 통찰과 제사장적 긍휼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야 한다. 위정자들에게는 치우침 없는 지혜가 임하기를 구하며 기도하고, 거대한 힘의 논리에 짓눌려 불안해하는 이 땅의 이웃들에게는 복음이 주는 영원한 위로를 전해야 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거대한 국가들의 군사력이나 경제적 패권 같아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역사를 이끌어가는 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샬롬을 심고 가꾸는 성도들의 무릎에 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안정은, 오직 십자가의 은혜 안에 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요한복음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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