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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믿어도 좋은 것: 여린 지침의 떨고 있는 방향성!
김호남목사의 목양칼럼: ‘난심향’

유대인들의 아침 인사는 ‘보케르 톱/Good Morning!’이라 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마니쉬마!’로 인사를 나눕니다. 유대인들이 전국민적으로 매일 조금씩 읽어나가도록 정해진, 즉 매주 분량씩으로 분절된 토라-(‘파라샤’라 함)가 있는데, 그걸 잘 읽으셨읍니까?하는 이스라엘에서 흔히 듣는 아침인사입니다. ‘오늘 분량의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드셨습니까?’ 정도 되겠죠? ‘마니쉬마!’
AI와 대규모 금융펀드가 왔다 갔다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너무 복잡하게 엉키어 돌아가는 사회와 많은 정보의 홍수로 인하여 점점 고립되어 가는 것 같은 정체불명의 위기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합니다.
심리학자 N. 브랜든은 인간의 자기 존재감의 실체를 두 가지로 규명했는데요, 자기 효능감(나는 능력있는 사람이다)과 자기 가치감(나는 괜찮은 사람이다)입니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한 ‘효능감’과 ‘가치감’이 자신에 대한 자존감의 근거,근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는 무능력하다’,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라는 느낌과 반대되는 개념인데요, 우리가 좀 더 안정적이고 의미있는 삶을 살려면, 이런 패배감의 내용을 찾고 교정해 내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자기 주도적 삶을 추구해야한다는 말입니다.
과거의 상처 즉 ‘트라우마’ 속에 자꾸 머물려는 생각은 자신을 낮은 자존감의 상태에 방치하려는 회피의식이며, 그런 사람은 모든 상황을 ‘내가 아니라 주변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이해해 버린다 합니다.
모든 현재 나의 문제와 어려움은 어린 시절에 엄마와 아빠의 문제이고, 학창시절의 잘못된 친구 때문이고, 커서는 직장이나 배우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결코 그 과정 속에 자신에 대한 반성은 없는 것이죠. 그러나, 보십시오. 인생은 부모가 살아주는 것이 아니잖아요, 내가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즐길 때도 내가 즐기는 것이니까요!
크리스챤의 삶을 바르게 세워가려면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그리고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 자신의 과거에 대한 통절한 반성없이 그것을 그냥 덮고 묻어 버리는 것!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기에 우리는 실수할 수 있고, 실제로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런 실수였고, 짧은 생각에 잘못된 과거에 대한 심각한 반성이 없다면 그 사람은 십중팔구 그 과거의 상처와 습관의 되풀이됨을 막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 개선되지 못하는 삶에 끌려다니게 될 것이란 말씀이지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국이 낳은 위대한 문학가 한 강 작가는 그의 글에서 “현재는 과거를 도울 수 없지만, 과거는 현재를 도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참 귀한 통찰이라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런데, 성경의 선지자들은 단지 현재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만 과거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게 하는’일을 하였으며, 또한 ‘미래란 관점에서 현재의 일을 결행하려 했던 사람들’입니다. 과거의 역사적 기록들을 통해 오늘의 문제뿐 아니라, 미래의 일까지를 고려하는 자세입니다.
오늘 내가 해야 하는 이 일이 몇 십년 후에는 어떻게 평가될까?를 생각하며 부끄러움 없는 아니, 부끄럼 적은 결정들을 만들며 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굳이 성경적으로 표현하자면,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결정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지요.
지금은 작고하신 고 신영복 교수님의 글에 “지남철의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은 믿어도 좋습니다” 라는 글이 있습니다. 떨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 흔들림이야 말로 가장 정확한 정북을 찾아내기 위한 고뇌의 몸짓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신학을 하고, 교회를 섬기는 삶을 시작한 이래로 우리들의 삶은 그렇게 ‘정북’을 향하여 끊임없이 떨리고 흔들리는 삶이었고, 그게 세상 사람들, 친지들의 눈에 불안하게 보일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바른 복음과 그 진리가 주는 영원한 즐거움을 찾아 끊임없이 행진하는 성도의 발걸음은 정녕 정북을 향해 끊임없이 흔들리는 지남철의 떨리는 여린 지침과 유사하지 않을까요?
흔들리면서도 한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그런 신실한 리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늘 힘들고 떨리는 듯한 쉽지 않는 삶이지만, 전체를 보면 우리의 삶이 주님과, 그분의 나라를 향하여 두려움없이 서 있는 신뢰할 만한 기독교 지도자로 다듬어지고 세워지는 그런 의미있는 걸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김호남 목사 / 시드니 샬롬교회 담임, 전 시드니 신학대학 학장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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