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WORD

시편 16편 5-6절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Today
Admin

뉴스

더보기 →
오피니언/기고

불계공졸의 하나님

OCJ|2026. 1. 29. 16:05

김호남목사의 목양칼럼: ‘난심향’

 

 “해동에 아직도 이와같은 영물이 있었는가!" 이 말은 청나라 경학과 고증학, 금석학 및 서예의 대가로서 자신의 서재에 8 만 여권의 희귀한 장서를 확보하고 경전을 연마하던 당대의 제일인자 옹 강방이 동쪽 조그만 나라 조선에서 건너 온 25세의 젊은 학자 추사 김정희를 보고 놀라서 한 말이다. 

 

조선은 세계 역사상 그 유래를 찾기 힘든 ‘문치주의’가 이루어진 나라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중세, 근세국가들이 다 무치주의 즉 ‘힘’을 그 통치의 근간으로 하고 있던 것에 비하면 참으로 훌륭한 전통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문치주의가 국가를 통치하는 기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사대부라는 집권층이 형성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사대부라 함은 관직이 5품 이하를 칭하는 ‘사’ 그룹과 4품 이상인 ‘대부’를 합하여 문관관료를 총칭하는 개념이다. 

 

그런 사대부들은 ‘문학, 역사, 철학’을 전공 필수로 하고, ‘시, 서, 화’를 교양필수로 삼고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추사 김 정희는 이 모든 과목에서 우리식으로 하자면 올A 플러스를 받았던 인물이다. 

 

그에 대하여 일제시대의 조선 경멸적 분위기 속에서도 동경제국대학의 동양철학과 후지즈카 교수는 그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박 제가의 제자로 조선 오 백년 역사상 보기 드문 영재 완당 김 정희가 출현하여 연경에 가서 옹 강방과 완 원 두 경사를 알게 되고 여러 명현들과 왕래하여 청조학문의 핵심을 잡아 귀국하자 조선의 학계는 실사구시의 학문으로 빠른 진전을 보여 오백년 내로 보지 못했던 진전을 보게 되었다.“ 

 

국내외에서 이런 뛰어난 학적 업적을 평가 받던 추사에게는 그가 평생을 스승으로 모시던 두 분의 스승이 있었는데 그 스승들은 후지즈카 교수가 언급했던 바로 옹강방과 완원이었다. 추사의 호가 완당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그의 한 스승이었던 완원이 붙여준 아호였다. 

 

그런 추사가 제주도 유배시절에 두 스승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담계(옹강방의 호)는 ‘옛 경전을 즐긴다.’ 고 말했고, 운대(완원의 호)는 ‘남이 그렇다고 말해도 나 또한 그렇다고 말하지를 않는다.’고 했으니 두 분의 말씀이 나의 평생을 다한 것이다.“
 
이렇게 추사가 조선 오백년 이래의 대 학자로서 실사구시의 관점에서 새로운 바람을 조선과 연경의 학계에 불어 넣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뛰어난 명석함에도 물론 근거하지만 이렇듯 좋은 스승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서 부러운 마음이 한이 없다. 

 

추사에게 좋은 스승이 있었던 것처럼, 추사 자신도 좋은 스승으로 살았음을 우리는 그가 남긴 한 점의 그림으로 분명히 알 수 있다. 조선 회화사에 최고의 걸작으로 알려진 ‘세한도’ 가 그것이다. 

 

엄격한 반상의 도리가 시행되었던 조선에서 그는 계급을 뛰어넘어 중인 출신의 이상적이라는 제자와 참으로 아름다운 사제의 도를 나누게 된다. 그가 장안의 세도가로 유명세를 날릴 때뿐 아니라 제주도로 정배가서 외롭고 힘든 생활을 할 때에도 역관 출신인 제자 이상적은 멀리 중국에서 어렵게 얻어온 귀한 책자들을 천리 밖 고도에서 유배생활하는 스승에게 보내드렸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명문세도가들에게 상납하였으면 틀림없이 눈에 들었을만한 보물같은 책들을 말이다. 그런 제자의 변함없는 스승 챙기기에 감동한 추사가 필을 들어 감동적인 저 ‘세한도’를 그려 제자의 충정에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무릇 조선의 문인화가 그렇지만 세한도는 당대의 천재가 깊은 고려 생각 끝에 그려낸 대단한 작품이며 지금도 국보로 사랑받고 있다. 두 그루의 잣나무는 하늘을 향하여 기개있게 올라가고, 두 그루의 소나무중 늙고 갈라졌지만 그 힘찬 그루터기를 자랑하는 노송과 그 곁에 서있는 소나무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스승과 함께 하는 제자의 마음을 보여주기에 넉넉하다. 

 

한 채에 집을 그려내는 추사의 솜씨는 이제 젊은 시절의 풋내나는 천재성이 아니라, 완숙한 경지에 이른 복잡한 미술 이론을 간결하게 소화하여 보여 주는 문인화의 백미를 보여준다. 원근법과 역원근법을 적절히 구사하여 그려진 세한도를 다시보며, 우리는 그들 스승과 제자사이에서 누렸을 것이라 짐작되는 충일한 신뢰의 감정을 부러운 맘으로 그려본다.


현대 한국의 은자로 알려진 ‘씨알의 소리’ 고 함석헌 선생은 “따르고 배울 스승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통탄했던 적이 있는데 좋은 스승 밑에서 좋은 제자가 나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 시대야 조국이 온통 전후 복구와 경제 개발에 핏발이 서려 있어서 교사는 있어도 스승은 없는 그런 시대를 살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지난 세월을 탓하면 뭣 하노? 이젠 우리가 스승이 되어야 하는 걸.... 그러며 내가 제대로 스승답기는 한가? 하는 자문을 해 본다. 꾸짖을 때 엄히 꾸짖을 줄 알고, 위로하고 격려할 때 제대로 사람을 세워주고 있는가를 돌아본다. 

 

불같은 열정으로 제자들에게 비젼을 심을 줄 알고, 또한 세계사의 흐름과 시대의 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공,사,시,비를 균형있게 가늠할 수 있게 하는 혜안을 가지고 있는가?를 돌아보며 지지리도 못한 녀석이 스승 없는 탓만 하고 있다는 자책이 들었다. 

 

만나는 모든 사람과 스치는 모든 사물과 사건이 다 스승인 것을 모르고 말이다.
 
그러면서 문득 추사가 사용했던 인장 중에 ‘불계공졸(不計工拙)’이라는 작은 도장 하나가 생각이 났다. ‘잘되고 못되고를 가리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추사는 생전에 워낙에 많은 호와 인장 낙관을 사용하여 지금도 그의 작품의 진위여부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하는 조선 최고의 기인과 같은 수재였다. 

 

그런 그의 낙관 중에 ‘불계공졸’이라는 인장이 있다. 추사의 탁월함이 부럽기도 하고 나의 못남이 부끄럽게 느껴지던 그 즈음에 추사의 조그만 인장을 통해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추사같은 일가를 이룬 달인이 붓을 들고 휘갈기면 그것이 잘되고 못되고를 가리지 않고 명필이니 명문이니 하면서 서로 가져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추사보다 몇 만 배 뛰어나신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인생이란 작품에 어찌 잘되고 못되고를 가리며 스스로를 탓할 수 있겠는가! 김 목사 정신 차리시게!
 
우리네 인생이란 좀 못나 뵈거나, 좀 모자라 뵈어도 명인중의 명인이요, 달인 중의 달인이신 그 분의 작품 아니신가! 인간중의 명인의 작품이나 습작조차도 잘되고 못됨을 가리지 않고 수집하고 얻어놓으려 안달을 부리는데, 우리 하나님의 작품 중 최고의 걸작품인 우리 인간들이야 모두 명품들 아니실 리가 없지 않는가! 잘되고 못되고를 가리지 않으시고 당신의 백성들을 끝까지 책임지시며 사랑과 축복으로 인도해 가시는 그분의 걸작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감사의 머리를 조아린다. 

 

 

내 남은 삶도 불계공졸의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그분의 걸작품들인 영혼들을 사랑하리라. 그들을 향한 소망의 승리를 결코 포기치 않으리라. 새벽 여명을 타고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상긋하다. 불계공졸의 하나님 만세, 만세!


김호남 목사/ 시드니 샬롬교회 담임.  Ph.D. 전 시드니 신학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