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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억눌린 자의 목소리가 된 광야의 외침: 윌리엄 쿠퍼의 신앙과 유산
역사의 지평 위에 우뚝 선 이름
'윌리엄 쿠퍼(William Cooper)'라는 이름은 세계사에 각기 다른 흔적을 남긴 여러 인물을 떠올리게 합니다. 찬송가 '샘물과 같은 보혈'을 작시한 영국의 시인 윌리엄 쿠퍼(Cowper)부터 미국의 음모론자까지, 그 이름의 무게는 다양합니다. 하지만 우리 오세아니아 크리스천들이 가장 먼저 기억하고 조명해야 할 인물은 20세기 초 호주 원주민(Aboriginal)의 인권 회복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요르타 요르타(Yorta Yorta) 족의 지도자, 윌리엄 쿠퍼(1861–1941)입니다.

그는 단순한 정치 운동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복음의 가치를 사회적 공의로 치환할 줄 알았던 신앙인이었으며, 소외된 이들을 향한 '급진적 공감'을 몸소 실천한 그리스도의 제자였습니다.
복음, 투쟁의 언어가 되다
1861년 빅토리아주에서 태어난 쿠퍼는 식민 지배의 잔혹한 폭력과 인구 급감을 온몸으로 겪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는 성인이 된 후 '말로가 선교회(Maloga Mission)'에서 기독교를 접했습니다. 비록 선교회의 운영은 가부장적이고 통제적이었으나, 쿠퍼는 그곳에서 읽고 쓰는 법을 배웠고 무엇보다 성경을 통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존엄성의 원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는 신앙을 통해 호주라는 '기독교 국가'가 원주민들에게 행하는 모순을 지적할 수 있는 도덕적 비판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신앙은 현실 도피의 수단이 아니라, 불의한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공의를 요구하는 강력한 도구였습니다.
'의회로의 음성'을 향한 선구적 발걸음
쿠퍼는 72세라는 고령의 나이에 멜버른으로 이주하여 '호주 원주민 연맹(AAL)'을 설립했습니다. 그는 호주 정치사상 최초로 원주민이 직접 이끄는 정치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1933년부터 1938년까지 그는 영국 국왕에게 직접 청원서를 보내기 위해 호주 전역을 돌며 1,814개의 서명을 모았습니다. 비록 당시 내각은 이를 묵살했지만, 이 청원은 오늘날 호주 사회의 뜨거운 화두인 '의회로의 음성(Voice to Parliament)'의 영적·역사적 뿌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백인 정치인들이 원주민의 고통을 결코 '검은 마음(Think Black)'으로 이해할 수 없음을 간파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 크리스천들이 이웃의 고통에 동참할 때 단순히 시혜적인 태도를 넘어, 그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성육신적 공감'이 왜 필요한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수정의 밤(Kristallnacht)과 인종을 초월한 형제애
윌리엄 쿠퍼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는 1938년 12월 6일에 일어났습니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서막이었던 '수정의 밤' 사건 소식을 접한 그는 원주민 대표단을 이끌고 멜버른 주재 독일 영사관으로 행진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나치의 유대인 박해에 항의한 민간 단체는 거의 없었으며, 특히 자신들도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원주민들이 타 인종의 고통에 목소리를 낸 것은 경이로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에 분노하는 것은, 우리 역시 이곳에서 같은 대우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고난에 함몰되지 않고 타자의 고난으로 시선을 확장한 이 '급진적 공감'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과 호주 원주민 공동체 사이의 깊은 유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
윌리엄 쿠퍼의 삶을 돌아볼 때, 우리는 그와 이름이 같은 영국의 시인 윌리엄 쿠퍼(William Cowper)의 찬송 시를 떠올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신비하여 그 행하시는 일을 알 수 없네... (God moves in a mysterious way)"
시인 쿠퍼가 정신적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노래했다면, 활동가 쿠퍼는 사회적 억압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될 것을 믿으며 행진했습니다. 두 윌리엄 쿠퍼는 각기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고난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오늘날 오세아니아 땅에서 살아가는 한인 크리스천 여러분, 우리는 윌리엄 쿠퍼가 보여준 신앙의 기개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향해 눈을 돌리고, 복음의 진리 위에 서서 공의를 외치는 삶이야말로 이 땅에 심겨진 우리의 사명입니다. 윌리엄 쿠퍼의 기도는 멈추지 않았고, 그의 목소리는 오늘날 우리를 통해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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