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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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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근 칼럼 / 신구약을 관통하는 하나님의 최고 관심사

OCJ 2026. 11. 5. 03:41

성경은 우주적인 창조와 거대한 구원의 역사를 담고 있는 웅장한 책입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통틀어 하나님(혹은 예수님)께서 한 개인과 가장 길게, 그리고 가장 깊은 대화를 나누신 두 장면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구약에서는 극심한 고난으로 인해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관이 처참히 무너져 내린 '욥'과의 대화(욥기 38-42장)이며, 신약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뜨거운 정오의 태양 아래로 숨어들었던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요한복음 4장)입니다.

 

 

전혀 다른 시대, 전혀 다른 종류의 고통을 겪고 있던 두 사람이지만, 이 기나긴 두 대화가 향하고 있는 목적지는 명확합니다. 바로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것(사 61:1)'입니다. 이는 신구약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가장 깊고 궁극적인 관심사가 인간 내면의 치유와 회복에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연결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영적 트라우마와 척박해진 마음 밭

욥과 사마리아 여인은 모두 극심한 결핍과 고통으로 인해 마음의 터전이 무너져 내린 상태였습니다.

욥의 고통은 단순히 재산과 건강을 잃은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평생을 바쳐 믿어왔던 '인과응보'의 신학, 즉 선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견고한 세계관이 무너지는 끔찍한 영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곁에서 끊임없이 정죄하는 친구들의 날 선 언어 속에서 그의 내면은 갈기갈기 찢겨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수치심과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단단하게 굳어진 '길가 밭'이었고, 누군가와 깊고 안정적인 애착을 맺지 못하는 '돌밭'이었으며, 삶의 목마름과 염려로 가득 찬 '가시떨기 밭'과 같았습니다. 가장 뜨거운 낮 12시, 아무도 찾지 않는 우물가에 물을 길러 홀로 걸어온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짊어진 내면의 척박함과 상처를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정답 대신 '질문'으로 다가오시는 세밀한 손길

이토록 깊이 상한 마음을 마주하신 하나님과 예수님의 접근 방식은 우리의 예상과 다릅니다. 그분들은 일방적인 훈계를 쏟아내거나, 차가운 논리적 정답을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고도의 정밀하고도 따뜻한 대화를 통해 닫힌 마음을 열고 시야를 확장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 "물을 좀 달라"며 부드럽게 말을 건네셨습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 놀라운 낮아짐은 여인이 겹겹이 쌓아둔 마음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들추어 비난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공감해 주시며, 그녀가 느끼는 현실의 타는 듯한 갈증을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라는 영적인 차원으로 부드럽게 이끌어 가셨습니다. 굳어버린 여인의 마음 밭을 세밀하게 기경(起耕)하신 것입니다.

구약의 하나님 역시 욥에게 나타나셔서 고난의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 거대한 질문들을 쏟아내셨습니다. 창조 세계의 신비,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베헤못과 리워야단 같은 짐승들에 대한 압도적인 질문들은 욥을 압도했습니다. 이는 욥을 무시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시선을 '나의 고통'이라는 좁은 감옥에서 끌어내어 '하나님의 광대한 섭리'라는 더 넓은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시켜 주시는 장엄한 시선의 재구성이었습니다.

치유의 완성: 스스로 진리를 마주하는 '자각'

신구약을 관통하는 이 두 치유적 대화의 가장 위대한 공통점은, 내담자가 끊임없는 질문과 대화의 끝에서 마침내 '스스로의 자각(Self-Awareness)'에 이르렀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답을 통째로 떠먹여 주지 않으시고, 그들이 스스로 진리를 대면하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이끄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대화의 끝에서 스스로 영적인 눈을 번쩍 뜹니다.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라는 본질적인 자각에 이른 그녀는, 자신의 생명줄과도 같았던 물동이를 그 자리에 버려두고 자신이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는 동네로 달려갑니다. 진정한 치유가 삶의 실천과 회복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욥 역시 하나님의 거대한 질문들 앞에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고난의 이유(Why)를 파헤치며 스스로를 갉아먹던 집착에서 벗어나, 온 우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Who)을 대면하는 창조적 자각에 이른 것입니다. 이 자각 자체가 그의 모든 억울함과 상처를 덮고도 남는 궁극적인 치유였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맹렬한 사랑

사마리아 여인의 내면 깊은 곳을 파고든 예수님의 섬세한 질문과, 욥의 좁은 세계관을 깨트리신 하나님의 웅장한 질문은 결국 같은 목적지에 닿아 있습니다. 낡은 방어막과 좁은 틀을 깨고 나와, 스스로 진리를 깨닫는 '자각'을 통해 상처 입은 영혼을 온전하게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번의 긴 대화를 통해 신구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심장 고동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곳에는 정죄나 심판이 없습니다. 오직 고난받는 한 영혼을 인격적으로 대면하여, 가장 정밀하고도 다정한 방식으로 치유하고자 하시는 그분의 '맹렬한 사랑'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상한 마음 곁에 앉아, 가장 따뜻한 질문으로 기나긴 대화를 걸어오고 계십니다. 상한 심령, 마음밭을 기경하는 일이 오늘 우리 교회가 가장 시급히 서둘러야 할 과제입니다. 그 명확한 결과적 증거가 관계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김병근(엠마오 상담대학 학장, P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