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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이민 교회의 밭, 가라지를 뽑을 것인가 알곡을 심을 것인가
찬송 : ‘감사하는 성도여’ 587장(통306)
본문 : 마태복음 13장 24~30절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척박한 호주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이민자들에게, 교회는 단순한 종교 기관을 넘어 위로와 교제, 삶의 안식처가 되는 영적 고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민 교회라는 밭에 오직 '알곡'만 가득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한인 교회 안에는 사랑과 위로의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상처를 주고 갈등을 일으키는 '가라지'도 함께 자라나고 있습니다. 좁은 교민 사회 안에서 가라지 같은 사람들 때문에 시험에 들고, "차라리 저 사람이 교회에서 나갔으면 좋겠다"며 가라지를 당장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 우리는 어떻게 알곡의 신앙을 지켜낼 수 있을까요?
첫째, 호주 한인 교회 안에도 알곡과 가라지가 공존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이민 교회 안에는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비자의 막막함을 함께 기도해 주는 사랑과 위로(알곡)가 넘치지만, 동시에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생긴 상처와 허물, 연약함과 죄악(가라지)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완벽한 사람만 모인 교회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가라지 같은 허물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조차 변화시켜 알곡으로 만드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고 묵묵히 품어주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진짜 사명은 남의 가라지를 뽑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온전한 알곡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가라지를 뽑으려다 보면, 우리는 내 신앙을 돌아보기보다 남의 허물을 찾아 비판하고 정죄하는 심판자의 교만한 자리에 서게 됩니다. 좁디좁은 한인 사회에서 남의 흉을 보며 "저 사람은 가라지야"라고 비난하는 사이, 겉모양만 그럴싸한 바리새인처럼 나 자신이 도리어 가라지로 변해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 호주 땅에 심으신 이유는 심판자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척박함 속에서도 풍성한 은혜의 열매를 맺는 '알곡'으로 잘 자라나라는 것입니다.
셋째, 알곡인 우리는 영적 성장을 멈추지 않았는지 수시로 스스로를 점검해야 합니다. 모양만 그럴싸하고 속은 텅 빈 쭉정이처럼, 주일 예배는 참석하지만 한인 사회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라기를 멈춘 알곡입니다. 영적 성장이 멈추는 것은 사탄이 가장 바라는 전략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십자가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영원히 뽑혀 불태워질 가라지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가라지에서 알곡으로 빚어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한다면, 가라지 때문에 상처받거나 가라지를 솎아내려 혈기 부리기보다 내가 먼저 튼실한 알곡으로 성장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치열한 호주의 이민 밭에서, 우리 자신이 온전한 알곡으로 자라나 내 곁의 가라지마저 생명의 알곡으로 변화시키는 넉넉한 신앙의 가문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상처가 많은 이민 교회 안에서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형제의 티(가라지)만 찾아 정죄하려 했던 교만을 회개합니다. 내가 먼저 십자가 은혜로 빚어진 알곡임을 기억하게 하시고, 남을 판단하기보다 스스로 영적 성장에 힘써 호주 한인 공동체를 생명의 열매로 가득 채우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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